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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회사(8)-오순절 선교사의 입국과 활동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현대 오순절 운동의 흐름 속에서 창립되어 오늘날과 같은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어떤 교회이며 무엇을 중요시 하며 다른 교회와 구별되는 특징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려면 필연적으로 현대 오순절 운동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본지는 11주에 걸쳐 ‘현대 오순절운동의 역사’에 대해 연재하고자 한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현대 오순절 운동의 이해 ②현대 오순절 운동의 역사적 배경 ③현대 오순절 운동의 신학적 핵심 ④현대 오순절 운동의 초기 지도자들 ⑤현대 오순절 운동의 확산 ⑥미국 하나님의성회의 창립 ⑦한국 초기 오순절 운동 ⑧오순절 선교사의 입국과 활동 ⑨한국 초기 오순절 교회와 지도자들 ⑩한국 오순절 교회의 위기와 극복 ⑪한국 하나님의성회의 창립.<편집자 주>

  일제강점기 동안 회개와 기도 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 교회의 성령 운동은 일제의 탄압에 의한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오순절 신앙이 선교사들에 의해 증거 되었다. 이번 주에는 오순절 선교사들의 입국과 그 활동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럼시(Mary C. Rumsey) 선교사의 입국과 활동

 1) 럼시 선교사의 입국
 우리나라에 최초로 오순절 신앙을 전파한 사람은 메리 럼시 선교사이다. 럼시 선교사는 1885년경 미국 뉴욕 주 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성장 과정은 다소 불우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일찍 떠나 그녀는 외할머니의 슬하에서 자랐다. 럼시는 선교사로 한국에 오기 전까지 뉴욕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또한 감리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면서 뉴욕 주의 로체스터 성경훈련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런 어느 날, 럼시는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의 대부흥 집회(1906∼1907년)에 참석하여 크게 은혜를 받고 성령 침례와 방언의 은사를 체험하였다. 그리고 이 때 “한국으로 가라”는 생생한 성령의 음성을 들었고, 이 선교적 명령을 평생의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한국으로 갈 여비를 마련하지 못하여 오랫동안 선교 후원자를 위해 기도하였다. 럼시는 마침내 같은 교회에 출석하던 덴버드라는 성도의 후원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에 입국하기 전 먼저 일본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미국 하나님의성회가 파송한 주일(駐日) 선교사 헤리엇 디쓰리지의 선교 사역에 동참하였다. 중보기도 사역과 교육 그리고 전도 사역으로 선교부의 오순절 운동에 힘을 보탰다. 

 2) 럼시 선교사의 활동
  럼시 선교사는 한국 선교에 대한 사명을 받은 지 약 20년이 지난 1928년 봄, 서울 정동에 도착하였다. 럼시가 한국에 처음 여정을 푼 곳은 정동에 위치한 시병원(施病院)이었다. 이 병원은 의료 선교사 스크랜튼과 헤론이 세운 병원이었는데 당시 내한 선교사들의 임시 거처이기도 했다. 럼시는 짐을 풀자마자 먼저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멀고 먼 한국에 왔습니다.
 나로 하여금 이 땅에서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게 하시옵소서.

 럼시는 엄세(嚴世)라는 한국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어느 날 구세군 조선본영 사무실에 들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던 청년 허홍을 만났다. 부친이 구세군 사관이었던 허홍은 구세군에 입대하여 성경통신관의 사무를 보고 있었다. 당시 허홍은 사역에 한계를 느꼈으며 그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럼시의 방문을 받고, 럼시로부터 선교 사업을 같이하자는 제안을 받자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하였다. 허홍은 어려서부터 선교사들과 함께 생활한 관계로 영어를 잘해 럼시의 통역 또는 럼시의 선교 사역을 잘 도울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럼시는 먼저 허홍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오순절 신앙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성령침례의 증거가 방언이라는 것과 신유의 역사에 대해 알려 주었으며 허홍 역시 성령침례를 받게 되었다. 럼시는 허홍과 함께 시병원에 선교 본부를 두고 오순절 신앙을 전파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펼치기에 시기가 좋지 않았다. 럼시가 한국에 도착한 1928년 바로 그 다음해, 감리교의 이용도 목사가 이끄는 부흥집회가 시작되었다. 집회의 열기가 더해가면서 많은 사람이 방언과 신유의 은사를 체험하였고, 그 열띤 반응이 짧은 시간 내에 사회 전반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그러자 기존 교회 측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신앙형태가 한국 교회를 다 휩쓸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졌고, 결국 이용도 목사의 부흥 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1931년, 평양노회에서 성도들에게 금족령을 내리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게 되었다. 이런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럼시와 허홍은 적극적인 활동을 할 형편이 안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는 5년간 계속 되었고, 193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국 최초의 오순절 교회인 서빙고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럼시는 일본에서 미국 하나님의성회 파송 선교사와 함께 사역한 기록은 남아 있으나 미국 하나님의성회 소속 선교사는 아니었다. 미국의 엘림 선교회의 후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오순절 신앙을 전한 최초의 선교사였다.

2. 오순절 신앙을 전한 선교사들

 아주사 거리 부흥을 통해 오순절 신앙을 체험하고 한국에 온 선교사는 럼시만이 아니었다. 미국 하나님의성회 선교사로 1954년부터 1977년까지 사역했던 존 스텟츠(John Stetz)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한국에 온 럼시를 비롯한 10명의 여성 선교사를 언급하고 있다. 미국 출신으로는 메리 럼시, 글래디스 파슨, 엘프레다 오프스태드 선교사가 있고, 영국 출신 선교사는 엘시 메레디드, 릴리 베시, 밀드레드 M. 배시이다. 노르웨이에서 온 선교사는 린드퀘스트, 스테빅이며 그리고 호주에서 온 두 명의 무명 미혼 여성 선교사들이다.
 이 중 파슨은 미국 하나님의성회에 속한 교회에서 개인 선교사 자격으로 1930년도에 한국에 왔다. 그녀는 한국에 3년 정도 머물렀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엘프레다 오프스테드가 입국하였다. 이 두 여성은 오순절 사역자 배부근이 수창동교회를 세울 때 재정적으로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1933년 영국에서 메레디드와 베시가 파슨의 초청으로 오게 되었다. 이 두 여성은 영국 하나님의성회 교인으로 개인 자격으로 한국에 온 것이다. 메레디드와 베시 또한 배부근이 시무하는 교회에 재정적 지원을 하였다.
 한국에 입국하여 활동한 오순절 선교사들은 여성이며 자비량 선교사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것은 한국에서 활동한 장로회나 감리교와 같은 타 교단의 선교사들이 대부분 남성이며, 정식으로 교단의 파송을 받았다는 점과 차이가 있다. 이들 오순절 선교사들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복음 증거를 위해 헌신하였으며 이러한 헌신은 이후 오순절 운동이 활발히 전개될 수 있는 소중한 토양이 되었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기사입력 : 2018.05.06. am 12:31 (입력)
국제신학교육연구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