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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오순절 운동의 역사(7) - 한국 교회 초기 성령 운동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현대 오순절 운동의 흐름 속에서 창립되어 오늘날과 같은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어떤 교회이며 무엇을 중요시 하며 다른 교회와 구별되는 특징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려면 필연적으로 현대 오순절 운동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본지는 11주에 걸쳐 ‘현대 오순절운동의 역사’에 대해 연재하고자 한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현대 오순절 운동의 이해 ②현대 오순절 운동의 역사적 배경 ③현대 오순절 운동의 신학적 핵심 ④현대 오순절 운동의 초기 지도자들 ⑤현대 오순절 운동의 확산 ⑥미국 하나님의성회의 창립 ⑦한국 초기 오순절 운동 ⑧오순절 선교사의 입국과 활동 ⑨한국 초기 오순절 교회와 지도자들 ⑩한국 오순절 교회의 위기와 극복 ⑪한국 하나님의성회의 창립.<편집자 주>


 한국 교회에 나타난 현대 오순절 운동은 한국 기독교를 형성하는 주춧돌과 같다. 오순절 운동을 통해 한국의 기독교는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굳건한 신앙을 형성하게 되었고 교회의 위대한 부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짧은 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어 기독교의 성장과 선교의 확장을 가져왔다. 이번 주에는 한국 교회 초기 성령 운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한국 교회 성령 운동의 발단  

 한국의 초기 성령 운동은 1903년 8월 원산에서 열린 기도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남감리교 소속의 하디(Robert A. Hardie) 목사는 강원도 지역에서 선교하던 의료 선교사로 3년 동안 의료 선교를 하며 열심히 사역을 하고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척박한 선교지에서의 생활은 그를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지치게 만들었다.

 영적인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하디 선교사는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던 화이트(M. C. White) 선교사를 초청하여 동료 선교사들과 함께 일주일간 원산 창전교회에서 성경 연구와 기도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 모임에서 영적인 고갈을 느끼고 있었던 선교사들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 후 하디 선교사는 한국 교인들 앞에서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간증하고 자신의 교만과 무력함을 고백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이 때 선교사들의 모임에 임했던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온 회중에게 임했고 원산 지역의 큰 부흥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원산 부흥 운동은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교파의 장벽을 허물고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1904년 1월 원산에서 개최된 교파별 연합 기도회에서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 럽(A. F. Robb)이 성령을 체험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고 선교사를 중심으로 시작된 기도회는 점차 장로교와 감리교 및 다른 교파의 일반 성도들이 참석하는 집회로 확대되었다. 이런 부흥의 역사는 쉽게 식지 않았고 1907년에 일어날 평양 대부흥 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2. 평양 대부흥 운동 

 한국 교회 초기 성령 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큰 부흥 운동은 1907년 평양의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났던 평양 대부흥 운동이다. 원산 부흥 운동 이후 한국 교회의 달라진 변화는 성경 공부를 중심으로 한 사경회(査經會)이다. 신년이 되면 많은 교회들이 사경회로 모여 낮에는 성경 공부를 하고 밤에는 부흥 집회를 했다. 1907년 장대현교회도 1월 첫째 주일부터 사경회로 모였다. 1월 2일부터 사경회가 시작되었고 6일부터 15일까지는 저녁 기도회가 열렸는데, 기도회에는 매일 약 1500명이 넘게 모였다. 장대현교회 담임목사 그레함 리(한국명 이길함) 선교사와 블레어 선교사, 스왈런(한국명 소안련) 선교사, 그리고 목사 안수를 앞두고 있던 길선주 장로가 기도회를 인도했다. 길선주 장로가 성도들 앞에서 자기의 죄를 철저히 고백할 때, 성령의 불이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게 되었다.  

 평양 대부흥 운동을 통해 큰 회개 운동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평양 대부흥 운동 이후, 전국 곳곳에 많은 부흥 집회가 일어났고 복음 증거를 위한 열정이 불타올랐다. 1909∼1910년 사이에는 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해 ‘100만명구령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1909년 7월 산상기도회 후 전도여행을 떠나며 시작되었는데, 같은 해 10월 ‘연합선교사총협의회’가 서울에서 열렸으며 이때 ‘100만 인을 그리스도에게’라는 구호에 의해 복음 전도가 가속화되었다. 이후 100만명 구령운동은 초교파적 사업으로 확대되어 많은 전도의 큰 결실을 맺게 되었다. 


 3. 한국 교회 초기 성령 운동의 지도자들    

 한국 교회 초기 성령 운동에 의해 나타난 한국 교회의 뚜렷한 변화 중 하나는 선교사 중심의 성령 운동이 길선주, 김익두, 이용도와 같은 한국인 지도자 중심으로 발전되었다는 점이다.

 길선주 목사는 1907년 평양 장로교신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 장대현교회 목사로 임직되었다. 길선주 목사는 성경의 절대권위를 강조하고 성경공부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특히 그는 요한계시록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며 종말론적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강조하였다. 성도가 물질뿐만 아니라 시간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생각한 길선주 목사는 성도들에게 특정한 시간을 구별하여 전도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면하였다. 길선주 목사의 주도로 시작된 성령 운동은 새벽 예배나 철야 기도와 같은 기독교 전통을 마련했으며, 한국 교회의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는 28년 동안 2만 번 이상의 설교를 했고, 3000명 이상에게 침례를 베풀었으며, 6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김익두 목사는 1910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황해도 신천장로교회 목사로 임명되었다. 김익두 목사는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향해 메시지를 전했다. 그의 신유 운동은 예식과 형식에 얽매인 한국 교회에 도전을 주고 각성케 했다. 김익두 목사는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사모하고 초대 교회의 뜨거운 열정을 사모할 것을 권면했다. 그의 목회 활동을 통해 가난하고 병든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를 받았다. 그는 전국을 돌며 집회를 인도하였다. 그의 부흥 집회와 전도 집회를 통해 약 2만 8000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고 약 1만 명의 사람들이 신유를 경험했다.  

 이용도 목사는 1928년 협성신학교(감리교 신학교 전신)를 졸업하고 강원도 동천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열심히 목회하였지만 어떤 열매도 맺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영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금강산에서 1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고, 성령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능력의 메시지와 기도로 한국 교회의 부흥을 이끌게 되었다. 이용도 목사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과 사랑을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이와 같이 초기 성령 운동은 한국 기독교를 견고하게 세우는 디딤돌이 되었으며 한국 교회의 부흥을 이끄는 힘이 되었다. 한국 교회는 성령 운동을 통해 스스로 서게 되었으며 또 복음을 열정적으로 증거하게 되었다. 한국 교회 초기 성령 운동은 한국 교회가 널리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위대한 유산이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기사입력 : 2018.04.29. am 10:52 (입력)
국제신학교육연구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