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야에 꽃을 피우는 키부츠 스데보케르
“광야와 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 꽃이 피며, 사람들이 주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영화를 볼 것이다”(이사야 35:1∼2(새번역))


2월과 3월 사이 이스라엘은 우기에 속한다.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오고 심한 경우 물이 넘쳐서 흐르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시기이다. 북쪽 산지에서 남부 광야지대까지 푸르름이 넘쳐 난다. 여름동안 메마르고 누런빛을 띠던 광야도 이 때 만큼은 너무나도 푸르게 변화한다.
이사야서에 보면 사막이 푸른 초장으로 변화하며 꽃이 피어 나는 모습을 묘사하는 구절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구절을 읽으면 비유와 어떠한 상징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것이 상징만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신다. 이스라엘에 와서 놀랐던 점은 어제까지 메말랐던 광야였던 곳, 풀 한포기 자랄 수 있을까 생각되던 곳이 비가 오고 물이 넘쳐나자 푸른 초장으로 변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초기 현대 이스라엘에 정착해서 살았던 유대인들은 아마도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소망을 가졌던 것 같다.
네게브에서 가장 큰 도시로 불리는 브엘세바에서 약 60km 더 내려오다 보면 작은 키부츠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건국과 비슷한 연수를 가진 네게브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스데보케르(Sde Boker)라는 곳이다. ‘카우보이의 땅’이란 뜻을 가진 이 곳은 이스라엘이 건국될 당시 1950년에 20여 명의 젊은이들이 ‘광야를 푸르게 바꾸리라’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내려와 시작한 곳이다. 이 후 이스라엘 초대 수상인 벤구리온은 자신의 은퇴 후 이 곳으로 내려와 살려고 마음먹고 말년의 한동안을 이 곳에서 지내기도 했다.
척박한 광야 한가운데 위치한 이 키부츠가 뭐가 그리 중요할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전국적으로 수백개의 키부츠가 존재한다. 키부츠는 이스라엘 농업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초기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 당시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것은 이슈브(유대인정착마을)였다. 그런 이슈브들이 농업의 중심으로 들어서면서 키부츠(협동농업마을)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이 마을들은 사회주의적 체제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나누는 곳으로 이스라엘 사회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그 당시만해도 모두가 살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키부츠는 모두가 함께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간다는 목표 아래 꾸준히 성장해 나가면서 이스라엘 농업을 변화시켜왔다. 그 가운데 한 곳이 바로 이곳 ‘스데보케르 키부츠’이다.
이스라엘이 건국할 당시 유대인들이 얻은 땅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건국과 동시에 시작한 독립전쟁, 1948년 전쟁은 2년반 동안 전 국토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머물게 했다. 그나마 그들이 얻은 땅의 절반 이상이 남부 네게브와 같은 광야지대였다. 북부 산지와 남부 네게브 광야를 제외하고 이스라엘이 농업을 지을 수 있는 땅은 한계가 있었다. 그와 같은 시기였기에 초대 수상이었던 벤구리온은 이곳 네게브광야에 이스라엘의 소망을 두었다. 그는 이 광야와 같은 척박한 땅이 성경에서 예언한대로 풍요로워 질 수만 있으면 이스라엘은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와 같은 시기였던 1950년대 초 20여 명의 젊은 유대인 청년들이 네게브 사막 한가운데 밤낮으로 땅을 일구고 물을 찾아내고 현재의 스데보케르 키부츠를 이루었다. 그 이후 스데보케르 키부츠는 사막 농업의 중심으로 서게 된다. 광야의 개발이 중요함을 깨달은 이스라엘 정부는 남부 네게브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게 되고 스데보케르 키부츠 옆에 벤구리온대학 산하 사막화 연구소를 개설하게 된다. 이 사막화 연구소는 스데보케르 키부츠와 함께 농작물 개발과 연구를 진행한다. 많은 수의 연구자들이 키부츠에서 오기도 하고 연구자들이 키부츠를 찾아와서 자신들의 연구를 농작물에 실험하기도 한다. 그 결과 스데보케르는 현재 네게브에서 가장 진보적인 농업연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스데보케르 키부츠를 이야기하면 웬만한 유대인들은 벤구리온의 생가를 떠올리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키부츠 내에서는 벤구리온이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고 많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벤구리온은 자신의 말년의 한동안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낮에는 노동을 저녁에는 집필과 편지를 쓰면서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지냈던 집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들러보게 되는 명소가 되었다.
스데보케르 키부츠는 단순한 농업의 중심이라기보다는 한 나라의 미래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제시하는 지표가 된 곳이었다. 이들이 꿈꾸는 것은 이사야의 말씀처럼 사막에 꽃이 피고 푸르러지는 것이다. 오늘도 이들은 사막에 꽃을 피우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땅을 일구고 물을 대고 있으며 그들의 자리에서 사막을 경작하고 가꾸는 일을 해 나가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의 키부츠들은 문을 닫거나 다른 형태로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전까지 사회주의적인 공동재산과 공동분배의 모습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변화하면서 더이상 매력을 잃고 오히려 뒤떨어지는 것과 같은 모습이 되고 자신들의 재산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불만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구성원들이 동등하게 일하고 동등하게 나누어 가지며 서로를 돌아보는 관계성을 가진 키부츠의 체계는 어찌보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하다. 그런 모습은 초기 이스라엘 사회가 어떤 사회를 꿈꾸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스데보케르 키부츠는 아직도 이런 체제를 고수한다. 물론 그 안에서 약간의 변화를 갖게 됨으로 지금 필자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공동세탁과 공동육아, 차의 공동소유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고 돌봐주는 공동체의 모습, 옆집사람들과 땅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 등 어찌보면 우리가 잊고 사는 공동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광야 그곳은 더이상 버려지고 메마른 고난과 저주의 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이스라엘 국가의 미래가 숨쉬는 장소이다.
김동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