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순복음교회는 현대 오순절 운동의 흐름 속에서 창립되어 오늘날과 같은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어떤 교회이며 무엇을 중요시 하며 다른 교회와 구별되는 특징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려면 필연적으로 현대 오순절 운동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본지는 11주에 걸쳐 ‘현대 오순절운동의 역사’에 대해 연재하고자 한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현대 오순절 운동의 이해 ②현대 오순절 운동의 역사적 배경 ③현대 오순절 운동의 신학적 핵심 ④현대 오순절 운동의 초기 지도자들 ⑤현대 오순절 운동의 확산 ⑥미국 하나님의성회의 창립 ⑦한국 초기 오순절 운동 ⑧오순절 선교사의 입국과 활동 ⑨한국 초기 오순절 교회와 지도자들 ⑩한국 오순절 교회의 위기와 극복 ⑪한국 하나님의성회의 창립.<편집자 주>
현대 오순절 운동은 ‘새로운 종교개혁’이라 불릴 정도로 현대 기독교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신앙운동이다. 현대 오순절 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18세기 존 웨슬리(John Wesley)의 감리교 운동, 성결 운동, 19세기 미국의 영적 대각성 운동, 영국의 케직(Keswick) 운동 등에서 영향을 받아 일어난 부흥 운동이다. 이번 주에는 현대 오순절 운동의 역사적 배경으로 18∼19세기의 신앙 부흥 운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존 웨슬리의 성화론과 성결 운동의 영향
영국 감리교의 복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존 웨슬리의 신학의 핵심은 ‘칭의’(稱義)와 ‘성화’(聖化)이다. 그는 이 두 가지 개념의 구분을 강조하였다.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중생하는 것이고, ‘성화’는 칭의 이후에 말씀과 기도생활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영적 삶을 말한다. 웨슬리는 특히 ‘성화’에서 구원 받은 성도라도 죄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칭의’ 이후에 뒤따르는 하나님의 ‘두 번째 은혜의 사역’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존 웨슬리와 ‘두 번째 은혜’
웨슬리는 ‘칭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첫 번째 은혜’로, ‘성화’를 ‘두 번째 은혜’라고 했는데, 특히 ‘두 번째 은혜’를 통해 내적인 죄가 정화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영적인 체험을 가리켜 성령의 내적 감화로 얻게 되는 ‘두 번째 축복’(Second Blessing)이라고 정의했다. 비록 웨슬리는 이를 ‘성령 침례’라고 부르지는 않았으나,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감리교가 두 번째 은혜를 강조하며 ‘중생’과 ‘성령 침례’를 구분함으로써 현대 오순절 성령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2) 성결 운동의 영향
미국의 남북 전쟁 이후 감리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성결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운동의 핵심은 세속화된 예배와 교회의 갱신에 있었으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성도들의 체험적인 신앙, 즉 성화의 체험을 강조하였다. 성화는 성령이 성도들의 마음에 내주하실 때 일어나는 영적 체험으로 ‘제2의 축복’ 또는 ‘성령 침례’라고 불렸다.
이러한 ‘성령 침례’에 따르는 외적 현상에 대해 성결 운동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 그룹은 성령 체험이 기도, 떨림과 같은 외적인 현상을 수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었고, 두 번째 그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 침례가 ‘반드시’ 방언과 같은 초자연적인 표적이나 기사를 통해 확증된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두 번째 그룹의 견해가 현대 오순절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2. 북미의 영적대각성 운동
19세기 후반, 무디(D. L. Moody)와 피니(C. Finney) 등이 주도한 미국의 부흥 운동과 영적 대각성 운동은 현대 오순절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중 초기 부흥 운동을 이끌었던 찰스 피니는 처음엔 칼빈의 예정론을 따랐지만, 점차 알미니안적인 입장을 취하며 구원을 위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성령 체험을 강조했으며, 중생 이후의 성령 체험을 ‘성령 침례’로 규정하여 그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성결 운동에 영향을 받았던 오순절주의자들은 무엇보다 성령 침례를 통한 성결한 삶을 추구했고, 성령에 이끌린 즉흥적인 설교와 새 신자들의 결신의 시간을 예배와 집회에서 중요한 요소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성령에 이끌린 예배와 성결한 삶, 그리고 체험적 신앙은 북미의 영적 각성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고 초기 오순절 운동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였다.
3. 영국의 부흥 운동
1820년대 시작된 영국의 부흥 운동은 1870년대의 무디의 부흥 운동을 거쳐 ‘케직 운동’으로 이어졌다. 케직 부흥 운동가들은 다비(John N. Darby)의 세대주의적인 역사 해석 방법에 의지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된 은혜의 시대가 그의 재림으로 끝나고 이제 곧 천년왕국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부흥 운동이야말로 전 인류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마지막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케직 운동가들이 주의를 기울였던 문제는 ‘어떻게 거룩한 삶을 완성할 수 있는가?’였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그들은 웨슬리의 신학적인 이해와 칼빈(J. Calvin)의 신학적 이해의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들은 성화를 회심의 순간부터 일생 동안 진행되는 신앙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성령 침례는 성화와는 다른 ‘능력의 부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성화보다는 성령 침례를 통한 은사적 체험을 강조했고, 이러한 점에서 정통 성결 운동과는 뚜렷한 신학적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영국의 케직 부흥 운동은 중생의 체험과 구분하여 성령 침례를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상의 중심에는 고든(A. J. Gordon), 메이어(F. B. Meyer), 심슨(A. B. Simpson), 머레이(A. Murray), 그리고 토레이(R. A. Torrey) 등이 있었다. 특히 토레이의 성령론은 웨슬리와 피니 이후 초기 오순절 신학을 체계화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이처럼 존 웨슬리의 성화론은 ‘칭의’와 ‘성화’를 구분함으로써 성도가 추구해야 할 ‘성화의 삶’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이러한 ‘성화의 삶’에 대한 열망은 19세기 감리교를 중심으로 한 성결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미국의 영적 대각성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부흥 운동은 영국의 케직 부흥 운동으로 발전하여 현대 오순절 운동의 토양을 제공하였다. 특히 영국의 케직 부흥 운동은 성화를 그리스도인의 일생 동안의 과정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중생과 성령 침례를 구분하며 무엇보다 성령 침례를 능력의 부여로 받아들임으로써 현대 오순절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