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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원 《사과나무》

“나무는 삶의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다”

영원한 아름다움, 긍정적이고 관대한 마음 품을 때 조화
공간 나누는 벽은 작품 걸릴 때 서로를 잇는 소통의 문 돼 

 “인생에서 살아갈 만한 가치를 부여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다. 미술품을 수집하는 데에는 두 가지 즐거움이 따른다. 하나는 아름다움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다.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무엇인가를 수집해 본 사람은 자신이 아끼는 수집품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지를 안다. 다른 하나는 아름다움을 나눈다는 것이다. 수집의 즐거움은 모아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기호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 둘의 공통점은 더하거나 나누어도 그 향기나 품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또한 ‘소유’와 ‘나눔’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예술만이 가진 특별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아닐 수 없다.

 미술품을 모은 시간이 30년이 넘으면서 어느 덧 작품 수가 제법 많아졌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는 물론 김창열, 오치균, 고영훈, 황재형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가까이 두게 된 것은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 큰 행운이다. 그중에서도 나의 동심을 자극하는 작품은 단연 이대원이다. 자연에 자신만의 색채를 덧세우지만 한번도 부정적이거나 음울한 법이 없다. 이대원 작품 가운데 특히 나무가 들어간 작품은 그 안에서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나무는 삶의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다. 결코, 거꾸로 가지를 뻗는 법은 없다. 작가는 생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자연의 이치를 빌려 말하고 있다.

 미국의 소설가 하퍼 리가 쓴 <앵무새 죽이기>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비로소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미술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술품을 감상할 때 미술가의 생각과 처지를 이해하면 그 그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오독의 가능성이 많이 줄어드는 셈이다.  

 농원의 작가라 불리는 이대원은 ‘나무는 삶의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위로 향해 제멋대로 뻗어 가는 나뭇가지에서 생명력이 태동함을 보았다. 나무가 거꾸로 자라지 않고 태양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다. 우리 앞에도 태양과 같은 밝은 날이 존재하지 않는가. 작가 특유의 긍정이 그림으로 표현된다. 그리하여 내일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으나 이대원은 확신에 찬 붓을 마음껏 놀린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아름답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보았다. 두 가지 뜻이 있었다. 하나는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였다. 또 하나는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휼륭하고 갸륵하다’고 적혀 있었다. 하나는 외적인 정의이고 또 하나는 내적인 정의이다.

 모든 유·무형의 물질이 서로에게 긍정적이고 관대한 마음을 품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은 우리가 아름다움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탓이다. 안과 밖의 균형, 나와 너의 조화가 안과 밖, 나와 너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게 한다.

 세계를, 너와 나를 통하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미술은 언제나 그 사이에 있다. 작품을 벽에 걸어두거나 세워두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 일까. 벽은 공간을 나누고 시간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벽에 걸린 미술품은 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하고 때로는 나의 내면으로 통하는 문이 되어준다. 그림이 걸려 있을 때, 벽은 단절의 벽이 아닌 소통의 문이 된다.

 미술품은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절대로 뿌리치거나 냉대하지 않는다. 그러니 누구든 언제든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세상이 점점 복잡하다. 어제가 오늘을 담보하지 못하고 오늘이 내일과 같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럴 때 미술은 나의 의지에 힘을 실어준다. 내가 어디든 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름다움에 대한 매혹, 소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욕망,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에서부터 훨씬 자유로운 지점이다.

안병광 장로(서울미술관 설립자)

 

기사입력 : 2018.03.18. am 11:3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