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음 신앙의 교리적 근간이며 핵심적인 신앙 체계인 ‘오중복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오중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복음)을 다섯 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제시한 것으로 순복음 신앙을 객관적이고 이론적으로 정리한 신앙 체계이다. 이 오중복음은 ①중생 ②성령충만 ③신유 ④축복 ⑤재림으로 분류된다. 우리가 오중복음을 잘 이해할 때 순복음 신앙의 특징적인 면을 보다 잘 파악하게 된다.<편집자 주>
신유는 육체에 한정된 것 아니라 전인적인 차원에서 나타나
오중복음의 세 번째 주제는 신유의 복음이다. 신유의 복음은 순복음 신앙의 핵심적 가치를 지닌다. 순복음 신앙이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믿으며 더불어 초대교회 이후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타나는 신앙 현상에 대한 실천적 적용이라고 할 때 신유는 그 대표적인 요소이다. 이런 점에서 신유의 복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성경에서 신유는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또한 순복음 신앙에서 신유는 어떤 의의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오중복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신유의 의미
신유(神癒)라는 말은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으로 병을 낫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유는 병의 기원이 어디에 있든지, 병의 종류가 무엇이든지 그리고 의학적으로 치료의 가능성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치유하심을 말한다.
신유는 예수님의 3대 사역의 하나로서 예수님의 사역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신유는 주님의 제자들의 사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으며 초대교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신유는 예수님의 공생애와 초대교회에만 일어난 단회적 사건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유를 행할 수 있는 권능을 그 제자들에게도 주셨고(마 10:1), 또 권능을 부여받은 제자들은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을 고치는 사역에 동참하였다(눅 9:6). 이처럼 신유는 예수님 시대에 있었던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 이후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재적 사건이다(막 16:17∼18; 약 5:14∼16).
2. 복음으로서의 신유
순복음 신앙은 질병의 주요 원인을 인간의 죄에서 찾는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결국에는 육체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절망적 존재가 되었다(창 3:17∼19). 그런데 죽음은 질병의 최종 단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질병은 곧 죄의 저주와 직결된다. 따라서 병의 치유는 죄로 인한 인류의 저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또한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천국의 복음의 증거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라’(마 10:7∼8)고 말씀하셨다. 신유는 사람들이 죄의 저주로부터 놓여났음과 하나님의 나라가 개인의 삶에서 실현되었음을 보여주는 기쁨의 소식이었다. 이러므로 성경에서 신유는 복음의 진리를 확증하며 복음의 능력을 입증하는 역할을 했다. 신유는 복음의 사건이며,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유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요 사역을 이어받는 사역으로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며 모든 교회에서 계승되어야 할 필수 사역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3. 은사로서의 신유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신유가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지 의심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의하면 신유는 사도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은사로 이해되었고(고전 12:9,30), 실제로 그들의 의해 초대교회에서도 신유의 사역이 일어났다. 신유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복음과 구원의 외적 표현이었다면,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신유는 은사의 표적으로 볼 수 있다(막 16:17∼1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유를 은사로 허락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동일한 사역을 재현했다(눅 9:6; 약 5:14∼16). 제자들이 행했던 가장 대표적인 신유의 예는 사도행전 3장 6∼8절에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해 날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해야만 했던 거지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다. 성전 미문에서 일어났던 이날의 신유 사건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제자들에게 의해서도 신유의 역사가 여전히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제자들과 초대교회의 신앙인들은 신유를 예수님만이 행하셨던 사역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은사를 부여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도 행할 수 있는 사역으로 인식하게 되었다(행 5:12∼16; 9:36∼42; 19:12; 28:9; 고전 12:9,30). 이처럼 신유는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나타난 은사인 것이다.
4. 전인구원으로서의 신유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신유의 복음은 전인구원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신유의 일차적인 대상이 육체적인 병이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치료가 어떤 특정한 병이나 또는 정신적인 질환에 국한된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의 치료하심이 인간의 모든 병을 포괄하고 있음을 증언한다(마 9:35). 예수님 또한 육신의 질병과 영적인 문제를 분리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질병의 뒤에 영적인 원인이 있음을 말씀하셨고, 그 영적인 문제를 제거하신 징표로 질병을 고쳐주기도 하셨다(마 8:28; 17:18). 예수님은 말로만 구원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치유를 통해 이를 드러내셨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유는 질병의 외적인 현상을 치료하시는 것을 넘어, 질병의 영적인 원인까지 진단하고, 해결하는 전인적인 구원의 차원인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성경에 나타난 신유의 사건들을 살펴볼 때 신유가 결코 육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영·혼·육의 전인적인 차원에 나타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치료자로 증거한다(출 15:26; 욥 5:8; 시 6:2; 103:3∼5; 렘 30:17; 말 4:2; 마 4:23∼24; 10:7∼8; 14:14; 눅 5:17). 그리고 성경은 신유 사역에 하나님의 성령도 동참하고 계심을 증거한다(고전 12:9,30). 이렇듯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인간을 치유하신다는 신유는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건이요, 기독교 신앙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는 신유의 복음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또한 신유의 은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믿는 자들이 신유의 은사를 사모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병 고침의 놀라운 역사를 행하신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