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주년 그 영광스러운 발자취를 돌아보다
1999년 굿피플 전신 ‘한국선한사마리아인회’ 창립
소외된 이웃에 사랑 나눔, 북한선교 본격화
인터넷을 통한 선교매체 강화로 복음전파
1998년 5월 18일은 우리 교회가 창립 40주년을 맞은 날임과 동시에 조용기 목사가 성역 40주년을 맞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5명으로 시작해 72만 명이라는 유례없는 큰 부흥을 이룬 우리 교회 40주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성도들의 감회는 남달랐다. 특별히 당일에는 제7회 학술 세미나가 국제신학연구원 주최로 ‘성령과 영적 각성’이라는 주제로 열렸고 델 타르 박사, 빈슨 사이난 박사, 명성훈 목사, 이영훈 목사가 주제발표를 담당했다. 이날 세미나는 우리 교회가 해온 그동안의 사역들을 재조명하고 감격을 나누는 한편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자리가 됐다.
순복음의 신앙은 하나님 중심, 이웃을 위한 이타주의의 신앙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영광 돌리고 나아가 이웃을 돌봄으로 생명력 있는 복의 열매를 맺기에 힘쓰는, 즉 나누어 주는 신앙이 정점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우리 교회는 40년 간 구제와 선교에 더욱 힘썼고 국내뿐만이 아닌 북한선교에도 박차를 가했다. 특히 인터넷이 보급된 시기, 인터넷을 선교매체로 삼으며 복음전파가 어려운 곳까지 온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창립 40주년, 다각적 활동 전개
교회창립 및 성역 40주년 기념예배는 5월 20일 대성전에서 드려졌다. 이날 예배의 강사로는 존 허스톤 목사가 초청됐다. 존 허스톤 목사는 불광동 천막교회 개척부터 함께해온 조용기 목사의 오랜 동역자였다. 허스톤 목사는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인내하며 전진해 온 결과 오늘날 세계 최대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며 허름한 천막에서 설교하던 20대 젊은 청년이 세계 최대 교회의 당회장으로서 성역 40주년을 맞이한 것에 깊은 감흥을 감추지 못했다. 예배와 함께 이날 특집 대담이 순복음인터넷방송국(FGTV) 주최로 열렸는데 이 대담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교회사에 끼친 영향과 21세기 세계선교 비전을 밝히며 성령의 역사와 기도의 열매가 교회 성장의 열쇠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자리가 됐다.
22일까지 부흥회는 계속되었고 헌혈운동, 특별 이웃돕기운동, 특별 환경운동의 특별 실천운동 4가지와 기도, 말씀, 전도3더하기운동을 진행해 교회 영적 부흥을 통한 내실을 다져나갔다. 특히 이 시기에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됐다.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기)운동과 알뜰시장으로 나온 판매수익을 여러 구제사업에 사용함으로 냉동된 경제 한파의 분위기를 녹녹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 교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발휘하며 소외된 사람들의 곁을 지켰다.
땅 끝까지 향한 선교와 구제 손길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 정신에 입각해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구제 활동을 활발히 펼쳐나갔다. 농어촌 각 지역에서 사역을 하는 교역자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초교파적으로 교회와 교역자들을 돕기에 나섰다. 가나안 노인복지원을 설립해 노인들을 위한 구제 사업을 실시해 70세 이상의 부양 자녀가 없는 노인들이 말씀과 기도 안에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됐다. 비장애인 성도뿐만 아니라 장애인 성도들에 대한 환경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장애인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1992년 장애인 연합선교회에서 장애인대교구로 조직을 확대 개편해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복음을 심어주었다. 또한 함께 예배드리며 말씀으로 위로 받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터전이 됐다. 신앙뿐만 아니라 재활 및 교육을 위한 공간인 ‘소망의 집’이 설립돼 장애아동들의 잠재 가능성을 키워주고 놀이를 통해 기초 생활 기능을 습득시키는 등 자활활동 역시 실시해 나갔다.
이러한 구제 활동을 실시하며 조용기 목사는 국내와 제3세계 미전도 지역의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구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는 민간구호 선교단체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이에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의 출발이 된 ‘한국선한사마리아인회’가 세계선교의 효시로서 1999년 2월 26일 조용기 목사를 총재로 창립하게 됐다. 창립예배에서 총재 조용기 목사는 각계인사 4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기도로 마음을 열고 전세계의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펼치며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단체가 될 것”을 당부하고 이 일에 일환으로 극심한 가난과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북한 동포를 도와야함을 강조했다. 창립총회에는 탈북자 40여 명이 초청됐으며 이날 후원의 밤 행사도 열려 정착 후원금 2000만원이 전달됐다. ‘한국선한사마리아인회’는 향후 사랑의 빵, 엘림복지원, 심장병 어린이 돕기, 농어촌교회 후원 등 빈민구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가깝고도 먼, 북한 선교 본격화
우리 교회는 1995,1996년 연이은 큰 수해와 흉년으로 인해 최악의 빈곤상황을 맞은 북한을 돕기 위해 ‘북한 동포 살리기 운동’을 실시하며 국내에 소외된 사람뿐만이 아니라 북한을 포함해 전세계의 빈민자를 구제하는 소망을 가지고 비전을 키워갔다. 이 운동을 통해 시가로 1억원에 달하는 사랑의 쌀 3300가마와 성금이 모였다. 모인 성금은 북한 청진의 영아원, 탁아소, 인민학교 등 어린이들에게 전달될 국수의 재원으로 사용되었고 장마로 인해 전염병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에게 의약품과 의류와 같은 구제품이 전달됐다. 이러한 구제활동과 함께 선교의 문도 열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산하 기구인 북한교회재건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우리 교회는 북한 내 20개의 교회를 재건하기로 계획을 세워 ‘북한 교회 재건 운동’을 펼쳤다. 재건 활동은 성도들이 민족의 아픔을 통감하고 북한 선교에 대한 열망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1996년 10월 18일에는 북한교회 재건과 민족 복음화 그리고 국민들의 영적 대각성에 목적을 두고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남북통일과 영적 각성을 위한 기도대성회’가 열렸다. 기도대성회가 열린 당시는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와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계획 등 남북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었기에 성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반도에 긴장이 해소되고 하루속히 평화통일이 도래하기를 눈물로 기도했다.
선교매체 강화로 온누리 복음전해
1996년부터 전국에 인터넷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인터넷에 대해 쉬지 않고 보도했고 그 다음해부터는 기업 간 인터넷 시장에 집입하려는 경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리 교회도 1997년 5월 정보통신선교회를 창립, 인터넷 서버 시스템을 설치하고 홈페이지를 개설하며 인터넷을 선교의 기회로 삼았다. 조용기 목사는 우리 교회가 정보통신 대열에 선두주자 격으로 들게 된 것과 기독교 정화활동을 펼칠 힘이 생겼음을 기뻐하며 선교적 측면에서 순복음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신앙을 전세계인에게 전달해 달라고 격려했다. 홈페이지에는 설교를 비롯한 교회안내, 신앙 및 선교자료, 구역예배 등의 정보가 제공됐고 인터넷 성경과 <순복음가족신문>의 주요 기사들을 접할 수 있어 복음전파 및 성도들의 신앙성숙을 도모했다. 무엇보다 각 나라의 언어로 동시 지원을 하며 선교사가 파송되기 어려운 지역의 사람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년이 지난 1998년 11월에는 방문 횟수가 월평균 65만 건을 넘어서며 연일 접속량이 폭증해 순복음의 오중복음 삼중축복의 신앙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전파도구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었다. 인터넷을 통해 순복음의 신앙은 전 세계에 확산됐고 정보화 사회의 윤리적 계몽에도 크게 기여하게 됐다.
우리 교회는 사도행전적 교회와 같이 선교와 나눔의 사역을 통해 한국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세상을 향한 교회의 역할을 수행하며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