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브라함의 여정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까지
한 해의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찾아오는 절기
아브라함의 여정 통해 주님의 은혜 느끼는 시간 가져
이스라엘의 10월은 특별히 더욱 분주한 달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절기 중 가장 큰 절기인 초막절이 10월 달에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이 지켜야 할 3대 절기가 나와 있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이다. 이 세 절기는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이 반드시 야훼 앞에 나와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출 23:14∼17). 그래서 매년 이 세 절기가 되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은 세계 각지에서 온 유대인들과 순례객들로 북적거린다. 그중에서도 초막절은 더욱 특별하다. 초막절은 유대력의 한 해의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찾아오는 절기이며 겨울이 시작되기 전의 절기이다. 그 다음이 유월절 그리고 칠칠절(오순절)이 온다.
이스라엘의 겨울은 초막절로 시작되며 첫 비가 내리기 전 가을 작물의 열매를 드림으로 한해의 수확을 마무리하는 절기이다. 이것은 장차 있을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잔치,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잔치를 의미한다. 유대력 티쉬리(아홉째달) 15일부터 7일간 진행되며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열려있는 절기이다.
작년 이맘때쯤 필자는 문득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산으로 이삭을 바치러 떠났던 아브라함의 여정은 지금 현재 필자가 살고 있는 브엘세바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리아산 즉 현재 예루살렘의 시온산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세계 각처에서 온 크리스천 유학생들과 함께 예루살렘까지 걸어서 가보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초막절이 시작하는 날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매년마다 야훼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여정을 떠났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께 이삭을 바치기 위해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그 여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작년 10월 16일 이스라엘에서 공부하는 크리스천 외국 유학생들 이스라엘의 크리스천 유대인과 아랍인 크리스천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네게브의 마지막 도시인 브엘세바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21명의 학생들, 지원 차량 1대와 숙박 및 식량 조달을 위한 차량운전자와 보조 2명 그리고 중간에 합류하게 될 가족들까지 해서 총 25명이 걷게 된 대장정이었다.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00㎞이며 산지와 구릉 그리고 계곡을 통과하면서 가는 길이다. 브엘세바에서 시작하는 이스라엘 내셔널 트레일(이스라엘 국토횡단길)은 이스라엘 전역을 통과하고 있으며 어디든 걸어서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서 남쪽에서부터 북쪽 예루살렘까지 걷기 시작했다.
25명의 인원들이 기도와 함께 시작한 여정은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넓은 평야지대에서는 그늘 하나 없이 뜨거운 가을 태양빛을 그대로 받아야 했고 쉴만한 마을 하나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숙박을 책임진 지원 팀들도 텐트를 칠만한 야영 장소를 찾기가 여간 쉽지 않았고 서로가 만나야 할 지점을 선택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각자의 출신이 다르고 살아온 배경과 생각들이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걷는 여정 가운데 서로를 돌아보게 하는 순간이 많았다. 더욱이 의미가 깊었던 것은 유대인 학생들과 아랍인 학생들이 함께 걸으면서 신앙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서 중보 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우리 여정의 가장 큰 도전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산을 오르던 중 휴게소에서 만난 두 명의 유대인 청년이었다. 우리에게 물을 나눠달라고 하던 청년들은 우리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우리들이 그 길을 걷는 지를 물어왔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어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두청년은 물을 얻어먹은 감사로 초막절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겠다고 하며 절기에 대한 설명을 한 후에 우리들의 믿음에 대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와 함께 있었던 크리스천 유대인 학생들이 말씀을 갖고 그들에게 메시아 ‘예슈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은 유대인 학생들에게 변절자라고 화를 내며 우리에게 떠나가기를 요구했다. 그들을 떠나오면서 우리의 마음에는 착잡합과 안타까움이 생겼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두 청년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였고 그 복음은 분명 하나님의 손을 통해서 그 안에서 싹을 틔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4박 5일 동안을 걸으면서 이스라엘의 남부 광야 지대를 통과하여 중부 산악지대를 지나서 가장 높은 성산이 예루살렘에 이를 수 있었다. 지나는 동안 블레셋의 장수인 골리앗과 다윗의 격전지였던 엘라 골짜기를 지났고 근대역사 가운데 유대인과 아랍인들의 처절했던 싸움이 있던 키부츠도 지나갔다.
드디어 여정이 마쳐지는 예루살렘 엔-케렘(침례 요한의 고향으로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마을)에 들어서게 되었다. 결코 길지도 짧지도 않는 여정이었지만 브엘세바, 아브라함이 평화를 선포하고 하나님을 의지했던 곳에서 시작하여 이스라엘 역사가 담긴 골짜기와 들판을 지나서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기 위해 준비된 침례 요한의 마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은혜는 넘쳐났다. 신기하게도 길을 걷는 동안 누구도 발에 물집이 잡히거나 아픈 이들이 없었다. 배가 고프거나 일사병 혹은 탈수증도 없었다. 그 많은 인원이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오는 동안 단 한번도 사고가 없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여정이었지만 함께 한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깨닫게 해준 사실이 있다. 바로 성경에서 말하던 대로 열방이 야훼께 돌아오며 모든 열방이 예루살렘에서 야훼를 찬양할 것이라는 것이다. 예루살렘 숙소에서 짐을 풀고 그 날 밤 보게 된 광경을 잊을 수 없다. 욥바 문에서부터 시작된 유대인의 행렬에 순례객들이 어우러져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서쪽 벽으로 향하던 광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서로가 어우러져 기뻐하고 춤추는 모습은 진정 하나님의 나라가 이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이 오면 하나님 나라의 잔치 자리에 예루살렘의 여정 가운데 만난 많은 사람들과 어깨동무하고 춤추며 들어가는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