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가을 햇살에 동네 어귀에 감나무의 노란 감이 그 색을 더욱 짙게 할수록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시월이다. 감나무는 길가에 가로수로 있기도 하며 혹은 경사진 야산이나 밭둑에서 발견된다. 가까이는 집 마당에도 있기도 하다. 요즘은 도시의 빼곡한 건물사이에도 종종 감나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감나무는 겨울철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가는 추운 지역에서는 저온피해를 입을 수 있는 온대성 과일나무다. 우리나라에서 남쪽지방에 많이 분포하는 과일나무로서 배수가 잘되는 땅이면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란다. 감나무는 야생하는 나무가 그러하듯 그다지 큰 병충해가 없는 나무이다. 나뭇가지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전정하는 가지치기도 하지 않아도 된다. 각종 퇴비가 없이도 척박한 땅에서 그럭저럭 잘 자란다. 어떻게 보면 사람의 인위적인 돌봄이나 보살핌 없이 자연생태계에서 천상의 은혜로 사는 과일나무다.
봄에 피는 감나무 꽃은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아서 그 존재감을 모르고 지나간다. 결실하는 과정에서도 설익은 푸른 감은 눈에 잘 띄지도 않아서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가을에 접어들면 노란색 감이 여린 가지에 주렁주렁 열린 모습이 되면 확연히 눈에 띄게 된다. 특별히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앙상한 가지에 달려 노랗다 못해 주홍색의 농익어가는 감을 발견할 수 있다.
설익은 감의 특징인 떫은 맛을 나타내는 탄닌(Tannin) 성분은 강력한 수렴제 역할을 한다. 이 성분은 세균이나 동물 같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물질로 다 성장할 때까지 과육에 남아서 외부의 유해물에 대하여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그러므로 벌레가 먹은 단감이나 홍시를 발견하기 어렵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덜 익은 감의 떫은 맛은 입안과 혀가 마치 마취된 것처럼 감각이 무뎌지며 의지대로 잘 움직일 수 없이 뻣뻣하여 한동안 입안을 어색하게 한다. 덜 익은 감은 그 종류에 관계없이 떫은 맛의 주성분인 탄닌이 많아 먹을 수 없으며 위장 소화기관에 연동운동을 저해하여 심하면 변비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잘 숙성되면 수용성 탄닌 성분은 불용성 탄닌으로 변화되어 놀랍게도 단맛으로 변화한다. 한번 단감이 된 후로는 다시 떫은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서리가 오고 눈을 맞으면 그 단맛을 더 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삶에서 단맛을 낸다. 그러나 아직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설익은 맛인 떫은맛으로 이웃을 불편하게 한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떫은감은 없다. 우리가 찾는 것은 단감이다. 성도는 까칠한 불신에서 오는 설익은 믿음생활이 아니라 구원에 감사로 인한 은혜 안에서 사는 단감 같아야 한다. 모세가 출애굽 한 후 광야에서 목마름으로 마실 물을 찾을 때 발견한 물이 몹시 쓴 물이어서 먹을 수 없는 마라의 물이 아니라 나뭇가지를 넣은 후 단물이 된 것과 같이 변화가 필요하다(출15:23∼25).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우리는 인생이라는 거친 광야에서 다시는 목마르지 않은 영생의 단맛을 내는 생수를 발견한 은혜이다. 성령은 인생의 역경을 은혜로운 영생의 기쁨으로 대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놀라운 변화이다. 물론 거룩한 믿음으로 숙성되는 성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학박사·고촌순복음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