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된 여리고의 키 작은 세리장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눅 19:5∼7)
무리들에 둘러싸여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던 예수님은 한 돌무화과나무 아래에 멈춰서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 보셨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도 나무 위를 향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나무 위에 있는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서 묵어야겠다” 이 광경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삭개오. 그가 누구인가? 그는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눅 19:2)가 아닌가? 무엇보다 죄인이 아닌가? 그런 그의 집에 묵겠다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리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삭개오의 이름은 “의, 맑다, 정결한 자, 깨끗한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삭개오의 삶이 그 이름의 뜻에 걸맞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직업은 세리장이었다(눅 19:2). 세리장은 세리의 우두머리로 한 지역의 징수권을 사서 몇 명의 부하 세리를 두고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세리는 로마정부에 협력하며 자기 민족을 대상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부당하게 많은 세금을 징수하여 착복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미움과 멸시를 받았다. 무엇보다 세리들은 이방인(이교도)과 자주 왕래함으로써 율법상 부정한 자로 규정되었고, 압제자의 하수인으로서 반역자 또는 변절자로 낙인 찍혀 유대 사회에서는 죄인들, 창기들, 이교도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받았다(마 9:10∼11). 그런 삭개오를 예수님께서는 부르시고 만나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집에 머물기까지 하신 것이다.
한편 삭개오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다(눅 19:3). 아마도 작은 키는 삭개오에게 열등감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만큼은 큰 사람이었다. 세리장이라는 위치에 있고,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한 번 보겠다는 일념으로 체면과 가식을 버리고 서슴없이 나무 위로 올라갔다(눅 19:4). 그런 삭개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주셨다.
그렇게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게 된 삭개오는 기뻐하고 즐거워했다(눅 19:5∼6). 그리고 예수님께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겠으며 자기가 억지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약속했다(눅 19:8). 이런 결심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삭개오와 그 가정의 구원을 선포하셨다(눅 19:9).
삭개오는 성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작은 키로 인해 열등감을 갖고 있었을 삭개오, 세상에서 인정받고, 물질적인 안정과 행복을 얻기 위해 세리가 되었으나 오히려 왕따가 되어버린 삭개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진정한 의미의 ‘깨끗한 자’ 삭개오가 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비로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정결한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