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와 인접한 독일 북부의 헤른후트(Herrnhut)에 간 적이 있다. 헤른후트는 인구 1200여 명에 불과한 자그마한 마을이다. 18세기 초, 이곳의 영주였던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폰 진젠도르프 백작(1700∼1760)은 체코 서부 보헤미아의 경건한 복음주의자로 18세기에 종교적 박해를 피해 헤른후트에 정착한 모라비안 교도들과 형제단을 만들어 근대 독일의 영적 각성을 이끌었다. 헤른후트는 ‘하나님의 피난처’ 또는 ‘하나님의 오두막’이란 뜻이다.
1727년 진젠도르프가 이끄는 모라비안 공동체 가운데 큰 부흥이 임했다. 하나님과의 진실된 만남을 통해 이들 공동체는 자신들의 생명을 가장 귀한 일에 바치기로 다짐한다. 1728년 진젠도르프와 형제단은 서인도와 터키 등에 선교사를 보낼 것을 결의, 4년 후 두 명의 선교사를 서인도 제도에 파송했다.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들이다. 이후 독일 남부와 스위스, 발트해 연안, 러시아, 북미 등 전 세계로 선교의 지경을 넓혀 나갔다. 18세기에 226명의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했다. 이들은 선교지로 가면서 자신들의 관을 짜가지고 갔다. 선교지에서 삶을 바치겠다는 결의였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진젠도르프는 19세에 뒤셀도르프에서 이탈리아의 화가 도메니코 페티의 작품 ‘에케 호모(이 사람을 보라)’에 묘사된 예수 수난 장면의 그림을 보고 평생 주님의 십자가와 동행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진젠도르프가 도메니코 페티의 그림 앞에 섰을 때, 내면의 음성이 들렸다. “내 너를 위해 이 일을 했건만, 넌 날 위해 무엇을 하려느냐?” 그 음성이 한 청년의 인생을 과격하게 변화시켰다. 그가 한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에 선교의 새 역사가 시작됐다.
2000여 년 전 빌라도 총독은 가시면류관을 쓴 채 자신 앞에 끌려온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에케 호모(Ecce Homo·이 사람을 보라)”라고 말했다. 채찍에 맞아 살점이 튀겨져 나온 처연한 예수 그리스도는 진젠도르프 뿐 아니라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내 너를 위해 이 일을 했건만, 넌 날 위해 무엇을 하려느냐?”
이태형 소장(기록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