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으로 많은 목숨이 희생되었고, 지금도 남북은 대치상태입니다. 최근에 북한은 계속해서 미사일을 발사하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불안해 하기보다 선열들의 희생과 정신을 기억하며 나라사랑을 실천해야 할 때 입니다. 사랑에는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희생도 뒤따릅니다. 온갖 고난 속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많은 선열들이 계십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나라를 사랑하신 수많은 분들 중에 대한민국 해군창설자이신 손원일 제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손원일 제독은 중국 상하이에서 중국의 해군을 보고 대한민국 해군 창설이라는 웅대한 꿈을 품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한 개인이 해군을 창설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며, 해군모집을 위한 모든 비용을 사비로 충당해야 했습니다. 초대 해군참모총장으로 일할 때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의 아내 홍은혜 권사는 “우리가 제일 고생하고 가난했던 때가 바로 남편이 해군참모총장을 하던 때이다.”라고 회상할 정도였습니다. 사람을 모아서 해군을 창설했다고는 하지만 전투함 하나 없던 때입니다. 당시 정부는 재정적 여력이 없었지만, 손원일 제독 이하 모든 해군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병사가 월급의 5∼10%를 기금으로 내고, 일부 수병들은 고철, 폐품을 팔아 보탰으며 부인들은 빨래, 삯바느질로 기금마련을 도왔습니다. 그렇게 4개월여 동안 1만 5000달러를 모았고, 그들의 염원에 감동한 정부는 4만 5000달러를 지원하여 마침내 미국 해양대학교의 실습선 ‘화이트헤드 소위호’(백두산함)를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배를 인수하러 갔던 15명의 장교는 경비절감을 위해 약 두 달간 배에서 숙식하며 배를 직접 수리하고 주포 장착, 포탄 구입 등을 마치고 1950년 4월 10일에 진해항에 입항하였습니다. 성금을 낸 국민들에게 보이기 위해 전국 주요항구 순항에 나서서 최종적으로 진해항에 귀항한 것이 6.25전쟁 하루 전날인 6월 24일이었습니다. 6.25전쟁이 시작된 그날 밤 저녁 9시 30분 경, 부산 인근 해상에 1000톤급 괴선박 한 척이 남한의 경고방송을 무시하며 남하 중이었습니다. 이는 부산을 점령하여 UN군의 지원을 차단하려는 북한의 무장수송선이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백두산함은 열악한 조건에서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목숨을 건 근접전을 선택합니다. 약 1시간의 치열한 교전 끝에 적함을 격침하고 반격의 교두보인 부산항을 지켜냅니다. 이 전투가 바로 ‘대한해협해전’입니다.
만일 손원일 제독과 해병들이 백두산함을 마련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6.25전쟁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한국군 마지막 보루였던 부산이 전쟁 첫날에 함락되었다면 반격은 커녕 UN군의 참전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의 작은 헌신이 모여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손원일 제독의 아버지인 손정도 목사님은 이렇게 자녀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한다.” 기독교 신앙과 애국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이번 현충일은 현충원을 방문하여 호국선열들의 정신을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