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가 라뚜와비(그분이 오셨습니다).”
 누군가 미얀마어로 그렇게 말했다. 역시 검은 복면을 한 사내 하나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가 곧 크하넴 즉 제사장인 모양이었다. 니니가 손목에 감고 있던 도청기의 ‘ON’ 버튼을 재빨리 눌렀다. 대회의장에 입장한 그는 천천히 앞 쪽으로 나가더니 단상에 올라서서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살루톤.”
 깜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틴어와 이탈리어어의 살루토는 인사를 의미하는 말이고, 스페인어로는 살루도인데 그는 ‘살루톤’이라고 했던 것이다.
“에스페란토 에스타스 비반타 링그보.”
 그 말을 듣고 깜보는 깜짝 놀랐다.
 (그래, 저건 에스페란토야!)
 깜보는 인천에 있을 때 신경환 선교사에게서 그 에스페란토의 기초를 잠깐 배운 적이 있었다. 에스페란토로 ‘살루톤’은 ‘밍갈라바’ 즉 ‘안녕하십니까?’ 정도의 인사였고, 다음에 나온 말은 ‘에스페란토는 살아 있는 언어’라는 뜻이었다.
 (그가 왜 죽은 말을 쓰고 있지?)
 에스페란토는 1887년 폴란드의 자멘호프 박사가 세계공용어를 꿈꾸며 만든 인조어였다. 지나치게 유럽어 특히 독일어를 중심으로 만들어져서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 모으는데 실패했고, 소수의 동호인들만 호기심에서 들여다 볼 정도였는데 대단한 비밀 조직으로 보이는 모임에서 그들의 보스가 에스페란토를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 말이 깜보를 더 놀라게 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제군들에게 한국어로 말하려고 한다.”
 깜보가 놀라고 있는 사이에 그는 자신의 말을 한국어로 바꾸었다. “우리 조상들의 언어를 뒤섞어 놓아 바벨탑의 건설을 중단시킨 노아의 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지난 4천 여년 동안 우리 가나안의 전사들이 추진해 온 첫 번째 과제는 막혔던 언어의 벽을 세계어로 허무는 것이었다.”
 역시 그는 가나안의 후예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선배들이 지혜를 모아 만든 에스페란토는 동방의 한 작은 나라에서 만들어진 한글에 뒤지고 있다. 오늘날 한글로 만들어진 노래와 문화가 세상을 뒤덮고,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모든 나라에 보급되고,  IT 기기 활용에 한글이 가장 적합한 문자로 떠올라서 전세계에 한글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어 발음이 서툴고 어휘도 부족했으나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에스페란토에 도전하는 한글을 파괴하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서울의 세종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리도누리 대회를 노려 대반격을 시도했다가 공격 센서를 무력화시킨 자살 프로그램 때문에 실패했다.”
 10년 전에 있었던 리도누리 세계대회는 전세계 한글동호회 즉 ‘리도누리’의 대표들과 각국의 한글 교사들 그리고 선교사들이 집결하고, 한글학회를 비롯한 국내외 학자들과 국가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큰 행사였다. 당시 ZZ 즉 ‘제타 존’이라는 테러 조직이 대회장에 시안화칼륨 가스를 살포해 참석자들을 몰살하려다가 실패했다는 것을 깜보도 들어 알고 있었다.
 (악한 명령을 자살시킨 프로그램이 있었지.)
 그 프로그램은 한 대학생이 개발한 것이었다. ZZ의 테러를 막아낸 후 덕수궁의 동쪽 마당에 숨어 있던 세종대왕 동상은 회기동의 세종 공원으로 옮겨졌고, 새로 제작된 세종대왕 동상이 경복궁 앞 광화문 광장에 번듯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다시 4년 후에는 ‘한글날’이 법정 공휴일로 회복되었다.
 “또 그보다 10년 전에는…”
 궁가 타이거는 계속 더듬거려가며 한국어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