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의 대가인 미국 예일대 셸리 케이건 교수는 인간이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결국 삶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죽음 이후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인간의 삶은 죽으면 끝이라고 말한다. 우리 삶이 가치 있고 소중한 이유는 바로 죽음이 지니고 있는 유한성 때문이라는 것이 케이건 교수의 지론이다. 명확한 끝,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죽음이 있기에 주어진 삶을 최고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좋은 말이긴 하지만 정말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영성가인 헨리 나우웬은 삶과 죽음을 ‘공중그네 타기’에 비유한다. 공중그네가 한번 휙 지나가듯이 인생은 짧디 짧다. 나우웬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공중그네 서커스를 자주 보러갔다. 그는 그네를 타고 곡예사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날아가고, 저쪽에 있는 사람이 받아주는 공중그네 곡예에 매료됐다. 한번은 그 서커스를 보다 곡예사에게 물어 보았다. “어떻게 그런 곡예를 펼칠 수 있습니까?” 곡예사가 대답했다. “잡아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저 저쪽 그네에 매달린 파트너가 나를 잡아줄 것을 믿고 그 사람을 향해서 믿음으로 손을 뻗기만 하면 됩니다”
나우웬은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공중그네 타기와 같이 휙 지나가는 인생이지만 한번 건너간다고 해서 결코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게 죽음은 건너감이다. 이쪽에서 그쪽으로 건너갔을 때에 받아주시는 분이 계시다! 그는 그것이 제한된 삶을 사는 인간의 최대 소망이라고 말했다. 나우웬은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죽음은 우리를 받아주실 자와 더불어 새롭게 출발하는 시작이라고 정리한다. 히틀러의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된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형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끝이지만 나에게는 영생의 시작이다” 그렇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 너머의 무한대의 삶이 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때, 나를 받아주실 분이 계시다. 그것이야말로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의 희망이 아닐까?
이태형(기록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