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81년 겨울, 초등학교 후배가 “형, ‘천국의 열쇠’라는 책 읽어 보았어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아니, 읽어 보지 못했는데…”
 “형 그 책, 한 번 꼭 읽어 보세요. 나는 누나 때문에 읽었는데, 꼭 한 번 읽어 보세요”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을 후배가 읽었다는 소리에 머쓱해지려는 순간 집에 있는 책을 가져 왔다며 빌려 주는 바람에 처음 읽게 된 책이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였다.

 당시에 읽은 책은 지금처럼 가로 조판이 아니라 세로 조판이었다. 글씨는 깨알 같았고 책 두께도 묵직했다. 처음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가다가 책장을 넘기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끝 무렵에는 아쉬움에 아껴가며 읽었던 책이다. 그 후 늘 그 책을 가까이 하고 읽게 되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 더 읽고 선교지에 있을 때, 한국의 최고 번역가로 인정받던 작가 이윤기 씨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하여 다시 한 번 읽었다.   

 이 책에는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한 마을에서 태어나 같이 자란 프랜시스 치점과 안셀름 밀리 신부. 두 사람은 모두 신실한 가톨릭교회의 사제로 성장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님과 교회를 매우 사랑한다는 것. 차이점이라면 밀리 신부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밀리 신부는 사도의 권세에 더 많은 가파른 관심을 기울인다. 반면에 프랜시스 치점 신부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사람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그의 기도에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주님, 이번만은 주님 뜻대로 마시고 제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러한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닌 타인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 나타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가 드리는 기도는 다음과 같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저희들은 이 세상의 시작조차 알지 못합니다. 저희는 수백 만 겹의 이불에 덮여 있는, 바닥없는 심연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려는 개미와 같습니다. 하나님, 저의 하나님, 겸손하게 하소서, 믿음을 갖게 하소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부분이 있다. 치점 신부가 선교를 위해 떠난 중국의 한 성주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맨다. 백약이 무효라 성주는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치점 신부를 청했다. 성주의 아들은 종기로 인해 열이 나고 그 열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치료방법은 종기가 난 부분을 칼로 찢어 고름을 빼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살 수 있으나 누구도 성주의 아들 몸에 칼을 댈 수 없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성주의 아들이 잘못되면 본인의 생명은 물론 교회의 존립마저도 뿌리 채 뽑히게 되는 상황에서 치점 신부는 칼을 들어 환부를 가른다. 환부를 찢자 썩은 고름이 뿜어 내는 악취.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지만 치점신부에게 그 악취는 악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 되어지는 향기로 느껴졌다. 결과는? 이 책에서 확인해 보기 바란다.

 폭염으로 뜨겁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 왔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사람을 더욱 사랑하는 가을이 되기를 소원한다. 그 사랑 없이 천국의 열쇠를 소유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