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의 파파베라 ④ (54) |
“꽃의 이름이고, 공주의 이름이기도 했지. 그래서 왕자는 아라후라의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여 잘 살았다는 거야.”
“어머, 그건 참 아름다운 전설이로군요.”
그러나 마싼다는 큭 하며 웃었다.
“왜요?”
“그건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만들어낸 가짜 이야기이야.”
“네?”
“아편꽃이 라틴어로 파파베라거든.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자기네가 벵골만에 들여다가 재배하게 한 그 아편을 인도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그런 해피 엔딩의 이야기를 꾸며내서 퍼뜨렸던 것 같아.”
깜보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영어는 라틴어의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서 아편꽃을 영어로는 오피엄 파피(Opium Poppy)라고 하나봐요.”
“아편꽃의 학명도 파파보르 솜니페룸이야.”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벵골 지역에서 재배하여 중국에 팔아넘긴 아편의 양이 아편 전쟁이 시작된 1840년에는 2500톤에 달했다. 그것은 8억 3000만 명이 동시에 흡입할 수 있는 양이었다. 당시 중국의 인구가 8억이었다니까 중국 전체를 몽땅 아편 중독자의 나라로 만들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아편꽃이 아직도 미얀마 샨 주의 고산지대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이건 마치…”
깜보가 길가의 빨간 꽃들을 내다보며 말했다.
“벵골의 식인 호랑이 쉬어 칸이 아라후라 공주의 아름다운 가면을 뒤집어쓰고, 황금의 삼각지대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 같군요.”
니니가 깜보의 말에 토를 달았다.
“그래도 요즘은 그 쉬어 칸의 기세가 많이 꺾였어.”
아편은 주로 반군 조직의 자금 조달을 위해 사용되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중국에서 본토 장악에 실패한 국부군의 패잔병들이 이 삼각지대에 들어와 아편 밀매로 자금을 조달했고, 태국, 라오스 그리고 미얀마에서 정치적 변란이 있을 때마다 반군 세력이 이곳에서 아편을 무기로 버티었던 것이다.
“정국이 그만큼 안정되었다는 건가?”
“아니, 한국에서 날아온 천사들 때문이야.”
“뭐라고?”
“코이카가 파견한 농업 기술자들이 들어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가르치면서 이곳 골든 트라이앵글도 달라지고 있어.”
“정말?”
“저기를 좀 보라구.”
니니가 손가락으로 창 밖을 가리켰다. 과연 빨간 아편꽃들 사이로 정리된 수로와 농지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경운기도 보였다.
“아편꽃 대신 농작물을 재배한다고?”
“뿐만 아니라 고추와 버섯 등 특용작물의 재배도 늘어나고, 죽세공품 제작법의 개량으로 수입이 좋아져서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는 집도 있어. 이젠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아편으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 거야.”
“그럼 멘사의 수입이 줄어들텐데?”
“멘사도 의약용으로 들어가는 정식 루트를 통해서만 아편을 판매하고 차와 커피, 호텔 경영 등 합법적인 사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어.”
“한국 때문에 쉬어 칸이 식성을 바꾸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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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6.06.26. am 11:39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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