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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특별기고>반드시 알아야 할 ‘6.25전쟁의 전말’ 그 진실을 밝힌다

 이러다가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야?
 북한이 지속적으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위험한 도발을 해올 때마다 지인들이 필자에게 하는 질문이다. 제2의 6.25전쟁은 과연 일어날 것인가? 하나님은 아시겠지만 그 누구도 제2의 6.25전쟁에 대한 정답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 발발의 원인과 오늘의 상황을 분석해 본다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6.25전쟁의 발발 원인


 김일성의 집요한 전면 남침 수락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스탈린은 소련이 1949년 9월 원폭 실험에 성공하고 10월에는 중국이 공산화됨에 따라 1950년 5월 김일성을 불러 남침을 허락하고 마오쩌둥(毛澤東)도 지원 약속을 하게 된다. 남침이 개시되면 남한 내 20만 명의 남노당원이 봉기할 것이라는 박헌영의 장담을 믿고 김일성은 6월 25일 드디어 전면남침을 감행했다.
 1949년 6월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시킨 미국은 1950년 1월 한국을 극동방어선인 ‘애치슨라인’에서 제외하여 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침 적화통일의 야욕을 불러 일으켰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전면 남침을 개시하자 맥아더 장군의 건의에 의해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즉각 미국의 참전을 결정하고 대대급 스미스부대를 7월1일 부산으로 공수하여 조기에 적의 남진을 저지토록하고, UN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여 UN군을 결성함으로서 미국을 비롯한 16개 참전국, 5개 의료지원국 등 참전 또는 물자지원으로 총 63개국이 우리를 도와 북의 적화통일 계획을 무산시켜 버렸다.
 
 북한의 남침 예상 못했나


 한국은 북한의 남침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1949년 12월 17일 정보국이 상부에 올린 ‘연말종합적정판단서’에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 정부는 이 보고를 무시해 버렸다.
 한국전쟁은 충분히 사전에 막을 수 있던 전쟁이었다. 미군이 철군하면서 한국군의 북진통일 의지를 우려하여 경무기만을 인계하였으며 한국 경제 원조 법안도 의회에서 부결되어 한국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북한군은 아군보다 두 배나 많은 병력과 우리에게는 한대도 없는 전차 242대와 항공기 211대, 자주포 176대, 그리고 아군보다 6배나 많은 곡사포로 무장하여 완벽하게 남침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던 바, 아군은 군 고위층에 침투한 적의 첩자로 인해 북의 남침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전쟁 발발 수개월 전부터 적의 남침 징후가 전방으로부터 속속 보고 되었으나 묵살되었고, 전쟁 발발 2주전부터는 대대급 이상 전후방 부대의 교대를 실시하고 주요 지휘관이 교체 되었으며 또 하루 전에는 2주전 내렸던 경계태세 강화 조치마저 해제한 후 병력의 2분의 1을 농번기 지원 명목으로 휴가 또는 외박을 보내 버렸다.

 특히 6월 24일 저녁에는 육군장교클럽 낙성파티로 육군 고위 지휘관과 본부 간부가 모여 밤늦게까지 댄스파티를 벌이고 뿔뿔이 헤어져 적 침공 사실을 보고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전군에 비상이 걸린 것은 급보가 들어온지 3시간이 지난 오전 7시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10시 30분경에야 보고를 받았다.
 당시 정황으로 보아 한국은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미국의 신속한 개입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 국군의 용전 그리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으로 승리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6.25전쟁에서 혼이 난 김일성이 지난 1965년과 1975년, 또다시 두 차례에 걸쳐 제2의 한국전쟁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북한의 적화통일 노선이 변치 않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호시탐탐 북한의 야욕


 1965년은 남한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전투부대 파병을 시작한 해로써, 남한과 미국의 군사력이 월남 파병으로 인해 분산 되었고 국내에서는 1964년 6월 한븡일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6븡3사태가 일어나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등 사회가 심히 혼란한 상황이었다.
 김일성은 1975년 4월 중국을 방문해 월남이 공산화 된 것처럼 한반도도 자기들에 의해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중국 지도부를 설득했으나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 중이던 중국 정부로부터 거절당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김일성의 호전적인 유전자가 그의 손자인 김정은에게까지 대물림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은 최근 3년 내에 무력통일을 하겠다는 호언을 측근들에게 수시로 하고 있으며 ‘전시사업 세칙’을 개정해 “공화국 남반부의 민주 애국역량이 들고 일어나 북에 지원을 요구할 경우 전쟁을 선포한다”는 내용까지 명기했다.

 북한은 지금 지구상 최악의 불량국가로 낙인 찍히고 있다.
 오늘의 남북한 전력을 비교해 보면 전투기와 함정 등 우리의 월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최신 장비로 무장한 해·공군이 북한군보다 전력상 우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북한은 우리보다 2배의 병력, 다연장/방사포, 전차, 미사일 등이 수적 우세를 보이고 있으며 비대칭 전력으로 5000톤의 화생 무기, 7배나 많은 잠수함정, 10배나 많은 수의 특수부대가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23기를 보유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핵무기는 2020년까지는 100여기가 될것으로 예상되어 절대적인 위협이 되고있다.
 한미연합사 주한미군의 막대한 전력이 우리와 연합전력을 발휘하고 유사시 5척의 항모전단, 2000여 대의 항공기, 19만명의 지상군이 증원토록 계획되어 있어 적은 감히 전면전을 감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이 시도하고 있는 대륙간 탄도탄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실험이 완전 성공하여 미국과 협상을 통해 평화협정을 맺고 주한미군의 철수가 이루어진다면 남북 간의 전력 균형은 북으로 기울게 되어 적화 통일을 위한 전쟁 발발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게 될 것이다.


 ‘종북세력 선전선동’에 절대 속지 말아야


 어떠한 위기에서도 국민이 하나 되어 결전의 의지를 보일 때 적은 감히 공격을 시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종북세력들은 오래전부터 평화협정을 주장하여 국론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월남 전쟁에 지친 미국의 키신저가 파리에서 평화협정을 주도하여 전쟁 당사자 4개국 외에도 8개국이 보장하는 평화협정을 조인하고 철군했으나 2년 후 월맹의 기습 남침으로 50여일 만에 월남패망의 통한을 남기게 된 사실을 우리 모두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북한이 남침 적화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특히 북핵을 무력화하기 위하여 핵에 의한 공포의 균형을 이루도록 자체 핵무기를 제조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겠으나 여러 여건이 이를 불허하므로 미국 핵우산 보호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고 공동 관리하며, 우리의 Kill Chain과 한국형 대공방어체제(KAMD)가 20조원 이상의 방대한 예산과 2020년 중반에나 완성되는 상황을 고려하여 미국의 사드(THAAD)를 조속히 배치 하여야한다.
 북한보다 44배나 잘살면서도 북한 선전선동에 속아 이용당하는 종북세력의  사회 갈등 유발과 이로 인한 정치 사회적 불안, 부정부패와 물질 만능주의, 그리고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일부 가진 자들의 탐욕 등으로 우리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 제2의 6.25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제2의 6.25전쟁을 막으려면 온 국민이 정신 차려야 한다. 역사와 전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참혹한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아 주시기를 우리 믿는 자들이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박환인 원로장로(사)6.25진실알리기본부 사무총장

 

기사입력 : 2016.06.26. am 11:38 (편집)
박환인 원로장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