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감내·감사(3감)의 영성

 창세기는 창조주 이야기로 시작해서 피조물 이야기로 끝난다. 타락한 인간의 저주로 시작해서 은혜받은 인간의 축복으로 막을 내린다. 왜 창세기가 요셉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막을 내릴까? 요한계시록 그 종말의 메시지와 연결된 창세기의 결론이 요셉의 생애일까? 요셉은 메시아의 그림자며 예표다. 요셉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더하실 것이다’이다(창 30:24). 무엇이 인생의 플러스가 되었을까? 요셉의 영성과 믿음은 종말적 문화와 병리현상이 만연한 때, 낙원을 잃어버린 인간이 어떻게 분노와 상실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해답을 들려주고 있다.

 1. 감수(甘受)는 감수(甘水)가 될 것이다
 요셉은 감수의 달인이었다. 감수란 ‘괴로움이나 외부의 자극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뜻한다. 그는 꿈꾸는 존재였다. 그에게는 자신의 채색 옷처럼 ‘해와 달과 열 한 별, 곡식 단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영롱한 꿈이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구덩이와 감옥에 묻히고 만다. 집단적으로 살의를 품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인가. 요셉은 파멸과 죽음의 구덩이와 감옥에 던져진 최초의 인물로 묘사된다. 형들은 살의의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창 37:20)

 비극적인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큰 고통이며 또 다른 죽음이지만 한편, 은혜로운 수용이다. 요셉은 그것을 알았다. 우리는 치명적인 현실이나 환경에 직면한다. 질병이나 대인관계에도 그렇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숨이 막히는 구덩이’에 파묻힐 때가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는 그것을 받아들일 때 시작된다. 크리스천 탤런트 이광기 씨는 아들을 신종 플루로 잃고 나서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가 신앙을 통해 받아들이고 나서야 자유함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감수다. 인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감수하셨기에 완성됐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감수는 쓴물이지만, 믿음으로 수용하면 단물, 감수(甘水)가 된다.

 2. 감내(堪耐)는 영광이 될 것이다.
 감내란 ‘어려움을 참고 견딤’이란 말이다. 요셉은 무고한 고통, 억울한 현실, 타의의 좌절에서 인내했다. 그는 절대권력을 얻은 후에도 형들을 죽일 수 있는 유혹까지 인내했다. 그가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담을 넘은 축복’(창 49:22)을 받은 것도 인내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현대인의 중증 병리 심리가 있다면 ‘중독과 충동’일 것이다. 이런 때 성숙한 크리스천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능력은 인내다. 믿음과 영성의 또 다른 말은 인내다. 잠언 결론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이 ‘후일에 웃으며’(잠 31:25)라고 했던 것은 인내가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자에 보면 인내 ‘인’(忍) 자는 칼 ‘도’(刀) 밑에 마음 ‘심’(心)이 있다. 그런데 칼 도자에는 빗금이 있다. 비수를 버리는 심정으로 참으라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요셉은 그렇게 형들을 용서했다. 그는 제국의 총리 뿐 아니라 자기감정의 총리였다. 요셉은 고백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용서의 중심에는 인내가 있다. 요셉은 현실을 감수했을 뿐만 아니라 감내했다. 결국 형들이 “어떻게 되나 보자”고 빈정거렸지만 승리는 요셉에게 돌아갔고 그들은 요셉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런데 요셉은 그냥 참지 않았다. 그냥 참는 것만큼 큰 고통과 부작용은 없다. 참을 때 영광을 안고 참아야 한다. 요셉은 ‘영광의 꿈’을 안고 참았다. 영광의 꿈을 안고 참은 구원의 표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십자가를 감내할 때 부활의 영광이 있다.

 3. 감사는 역동적인 제의(祭儀)의 축복이다.
 요셉은 고통스러운 현실에 절대 감사로 살았다.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라는 요셉의 절규에서 그의 감사 영성을 볼 수 있다. 그는 구덩이에서도 감옥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실 것’을 믿지 않았을까. “그럴 수가 있나?”라고 분노할 때 그 감정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한 글자의 변화’에 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감사하느냐 원망하느냐의 변형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쥐어짜야 기름이 나오는 올리브(감람) 산에 가시면서 찬미하셨다. 감사의 표현이었다.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막 14:26). 인류의 구원은 처절한 고통 속에서 역동적인 감사 찬양을 통해 이루어졌다. 감사는 역동적인 제의의 축복이다. “내게 감사제사 바치는 이는 나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이니 올바른 길 따라가는 그에게 하나님인 나의 구원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리라”(시 50:23-현대어 성경)

 모압과 암몬 자손 등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했을 때 여호사밧 왕과 찬양대가 역동적으로 감사를 ‘시작’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야훼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대하 20:22). 예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곳, 광야에서 감사드렸을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다.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기적의 중심에 주님의 ‘축사’가 있었다 (막 6:41, 막 8:6). 축사(祝辭)의 원어(유카리스테오)의 뜻은 ‘도저히 드릴 수 없는 중에 드리는 감사’다.

 필자는 감수·감내·감사가 마음을 변화시키고 인생을 바꾸는 것을 경험했다. 삶을 바꾸는 사람들은 3감의 수련자들이었다. 요즘 재활심리학이 주목받는데, 회복의 은혜는 3감의 시작에서 오지 않을까.

김상길 목사(신앙계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