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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복음선교의 열매 그들이 전하는 감사편지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I국에 심고 있습니다

 

 저는 I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악발 목사(사진 이영훈 목사 옆)입니다. 저의 사역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던 나의 스승이자 멘토인 배드보라 선교사님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이 편지를 씁니다.
 배드보라 선교사님은 제가 신학생 시절이던 1995년 저의 학교가 있었던 B시에 신학교 강사로 오신 것을 계기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배 선교사님의 성령에 대한 강의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당시 제가 사는 I국에서는 교회마다 성령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성령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에 강의 후 배 선교사님을 만났고 이후 저는 양육을 받게 되면서 배 선교사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신학생이었을 때에 5분도 기도 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통성기도와 방언기도도 몰랐지만 한국에서 온 배 선교사님을 통해서 성령충만과 방언기도에 대해 처음으로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만 출석하는 정형화된 크리스천이었고 신학을 하면서도 역동적인 신앙관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배 선교사님을 만난 후 성령의 능력으로 동행하는 삶이라는 신앙관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생활화하는 신앙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므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배 선교사님께 훈련받고 변화를 받아 1998년 10월에 사하 지역에 개척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수업을 하고 주일학교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섬긴 결과 현재 약 200여 명의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300명의 장년이 참석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통해 강력한 힌두권 지역에 복음이 들어가서 점차적으로 복음을 수용하고 반응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는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I국의 북쪽인 내륙에는 복음화율이 0.5%도 안 되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미복음화 지역을 위해서 배 선교사님에게 배운대로 성령운동, 기도운동, 말씀운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지교회 50개와 지도자 1000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내자신이 제자훈련을 받았던 것처럼 나도 또다른 헌신된 제자를 양육하는 꿈을 꾸며 나가고 있습니다. 
 2008년도에 선교대회를 통해 한국에 가서 직접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보면서 부흥이 성령의 역사임을 확인하게 되었고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을 하나님께서 큰 목회자로 사용하시는 현장을 보면서  리더십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저의 사역지에서 성령님과 온전히 동역하는 법,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사는 법을 가르치면서 부지런히 양육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겸손하고 성실하게 예수님의 성품을 실천하는 배 선교사님의 모습에 큰 배움과 도전을 받고 있으며 그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섬김의 리더십으로 많은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참된 목자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투르카나에 심은 선교사님의 사랑 잘 일구겠습니다

 저는 안 제롭 키사(사진 윗줄 오른쪽에서 세번째)입니다. 임연심굿피플미션스쿨 교감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교에 힘쓰는 여의도순복음교회와 후원을 아끼지 않는 성도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늘 천국에 계신 임연심 선교사님의 사랑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척박한 이 땅 투르카나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임연심 선교사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임 선교사님을 통해서 저는 흑암의 역사에서 어두웠던 어린시절을 벗어나는 빛이 임했고 오늘의 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1968년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재혼을 하셨기 때문에 4살된 저를 고모 댁으로 보냈습니다. 고모는 저를 학대했고 영양실조에 걸린 저를 보다 못한 할머니가 거두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알코올중독으로 갑자기 저를 찾아와 죽이려고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10대가 되자 할머니는 저를 다시 어머니에게 보냈고 가구도 없는 움막집에서 가난과의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대학 진학은 꿈도 못꾸었고 안경 하나 맞출 수 없는 가난과 희망 없는 삶은 육체의 질병까지 가져다 주었습니다.

 1991년 공무원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투르카나 지역으로 가게 됐습니다. 임신 5개월이 되었을 때 임연심 선교사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선교사님은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저를 만날 때마다 환한 미소로 맞아주셨고 잘 대접해 주셨습니다. 어느날 다른 한국 손님과 저희집을 방문하신 선교사님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시고는 저희 부부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셨습니다. 2003년 나이로비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선교사님은 계속 저를 찾아와 격려해주시며 장학금도 주셨습니다. 또한 제 등의 통증도 선교사님의 기도를 통하여 치유됐습니다. 선교사님 사역의 초점은 투르카나에 사는 사람들의 가난과 죄악된 삶을 자유케 하는 것이었고 선교사님의 능력있는 말씀과 개인적 가르침은 제 삶의 방향에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저에게 어머니와 같은 분이 되었습니다.

 2006년 선교사님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2007년 제 첫째 딸을 잃었습니다. 실의에 차있는 저를 선교사님은 오히려 위로해 주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2008년 선교사님은 저를 제 딸의 이름을 딴 유치원의 교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우리는 2010년부터 현지어로 번역된 오디오 신구약성경을 제작했습니다. 선교사님은 학교 설립을 꿈꾸셨지만 완성을 보지 못하고 천국에 가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생전에 만약 당신이 죽는다면 하나님께서 더 큰 그릇과 비전으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대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임연심굿피플미션스쿨을 설립, 지금 3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2014년부터 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기독교교육을 가르치기 시작해서 지난해부터 교감을 맡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친지들의 눈에 희망이 없었던 제가 교육을 받고 선교사님이 설립한 학교에서 섬김의 삶을 살게 됐습니다. 임연심 선교사님은 저희에게 모세와 같은 존재였고 모세의 뒤를 이었던 여호수아처럼 이제 강성영 선교사님께서 투르카나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선교사님들을 보내주신 조용기 목사님과 이영훈 목사님,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선교사님께 배운대로 하늘나라에 가는 날까지 굳건히 믿음의 길을 걷겠습니다. 

 

임연심굿피플미션스쿨 교감 안 제롭 키사(Anne Jerop Khisa)

 

기사입력 : 2016.05.29. am 11:49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