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본질 중독인 경우 많아
원인 발견과 치료 이뤄져야 해결 가능
부부상담을 하고 계시는 분들 중, 부인은 상담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데 남편이 좋아지지 않는다며 수퍼비전을 요청하는 경우의 예이다. ‘남편이 가족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온다.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오더라도 피곤하다고 잠을 자거나 아니면 TV만 본다. 부인이나 아이들이 말을 걸면 귀찮아하거나 짜증을 내고 늘 화가 나있는 듯하다.’ 평소에도 남편의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아 어떻게 반응할지 부인은 항상 전전긍긍한다. 부부관계를 안한지 1년이 넘었고 부인은 자신을 여자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점차 관계가 나빠지고 자주 싸우게 된다는 등의 이야기다.
이때 중독을 전공하지 않은 상담원의 경우에는 이 남편이 알코올에 중독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술을 마신 후 심한 폭행이 없었고 손을 떨지도 않고 또 헛것을 보고나 헛소리도 듣고 있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일정기간 동안 술을 마시지 않기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있는 등 일상의 생활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듯하여 술은 좋아하지만 알코올 중독 상태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 사람들의 경우에 알코올 중독하면 아주 심각한 증상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생긴 오해이다. 중독의 폐해나 부작용은 술 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부터 화를 잘 내고 싸움을 자주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등의 것도 있다.
위 경우의 예는 보통 알코올 중독으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부인에게 우선 중독의 특성과 지금 고민하고 있는 일련의 문제들은 남편의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이러한 경우에 남편의 본질적인 중독문제를 다루지 않고 단순히 부부관계만을 회복시키기 위한 작업을 하는 경우에 상담이 실패하기 쉽다.
실제로 상담가가 아니어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이러한 상황과 유사한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 때는 우선적으로 남편의 중독문제를 다루는 상담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위에서 든 예는 중독의 폐해나 부작용의 예로는 매우 양호한 경우이고 대부분은 이보다 훨씬 심각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 오랫동안 중독 상태에 있게 되면 반사회적으로 변하는 등 성격이 나쁘게 변하는 것이다. 더 심한 경우에는 인격까지 황폐화되어 우리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까지 하게 된다. 즉, 사소한 자극에도 지나치게 분노하며 조절하지 못하고 가족들을 폭행하거나 피해를 끼치는 정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필자는 요즈음 우리사회를 흥분케 한 부천 자녀 훼손 사건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그의 사이코패스적인 부분만 부각되어 가려졌지만, 언뜻언뜻 이야기되는 중에 매일 술을 마셨고 그 아버지로부터 수 없는 폭행을 당했다는 말들을 통하여 그 또한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희생자였고 술로 인하여 인격까지 황폐화된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알코올 중독으로 인하여 인격의 황폐화 그 자체를 보여주는 사건들이 많다. 성폭력의 경우에도 알코올 중독자인 부모와 오빠인 경우가 많다. 의처증, 의부증도 알코올 중독자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 중의 하나이다. 이들은 언제가부터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오해를 일삼으며 비난만 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는 경우가 없고 남과 세상 탓만 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비이성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인격까지 황폐화된 알코올 중독자 가족들의 경우,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지옥의 삶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가 매일 술에 취해서 행하는 폭행 때문에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자녀, 아버지의 성폭행으로 집 밖을 나오지 않는 자녀, 아버지 같은 남자와 만날까봐 두려워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사는 자녀, 반대로 아버지보다 더 심한 중독자를 만나 고통 속에서 사는 자녀, 항상 싸우는 부모님이 보기 싫어 무조건 집을 나와 길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도 많다. 대부분 알코올 중독자 부인들은 남편의 귀가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불안해진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오늘 저녁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또 동네사람들에게는 무슨 창피를 당할지븣. 그래서 매일 같이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하고 주변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이 두려워 고개를 들고 밖을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체로 가족들은 기가 죽어 있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서 잘 살고자 하는 욕구도 없고 온통 원망과 분노만을 가지고 살 뿐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토록 알코올 중독자인 부모를 원망했으면서도 자신도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실제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많은 사건사고를 일으키거나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된다.
이제 중독의 문제는 한명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중독이 되면 인격까지 황폐화되고 이혼 등 가정을 파탄시키고 범죄 등 사회 문제를 일으키며 각종 문제의 원인이 되는 등 중독으로 인한 폐해와 부작용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크다.
따라서 국가는 중독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중독자로 인하여 드러난 충격적인 결과에만 흥분하고 통탄 할 일이 아니라 그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파악하고 미리 대처하는 국가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하여 중독 유병율이 2∼3배가 높다. 가히 중독공화국이라 불리울 만하다. 얼마 있지 않아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다. 이제 중독이 전 국민에게 미치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국회의원이 나올 때도 되었다. 진정으로 국민의 안위를 원한다면 각 당에서 중독전문가를 영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조현섭 교수(총신대학교 중독재활상담학과·강서아이윌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