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 예배 가운데 은혜 베푸시기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찬송가 310(통 410), 369(통 487), 540(통 219), 563(통 411)장 중 2∼3곡을 찬송한다
예배로 부르심 ·································································· 사회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설날 가정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말씀낭독 ························ 시 103:1∼5 ······························· 맡은이
찬송 ···························· 552장(통 358) ······························· 다같이
대표기도 ··········································································· 맡은이
성경봉독 ························ 눅 15:11∼32 ······························ 다같이
설교 ·················································································· 맡은이
찬송 ···························· 559장(통 305) ······························· 다같이
주기도문 ··········································································· 다같이
천국의 기쁨이 함께하는 설날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입니다. 설날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식탁의 교제를 나누고, 세배를 하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고된 세상살이에 큰 위로를 얻습니다. 아이들은 세뱃돈으로 무엇을 살지 설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흐뭇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손주들이 소란스럽게 뛰노는 모습이 반갑고, 화목한 자손들을 보며 삶의 보람을 느낍니다. 설날이 주는 이러한 즐거움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맛볼 수 있는 행복입니다. 그런데 이 설날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천국의 기쁨을 더할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한 명절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기쁨이란 어떤 것일까요?
어느 집 널찍한 마당에 온 동네 사람들이 모였고, 밴드의 흥겨운 연주는 담을 넘어 마을 곳곳을 채워나갔습니다. 손님들에게는 최상급 품질의 소고기가 제공되었는데, 방금 잡은 살진 송아지로 요리한 것이었습니다. 이 잔치는 집을 떠났던 둘째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한 아버지가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소문에 듣기로 아들은 외국에 나가 자기 사업을 해보겠노라고 살아있는 아버지에게서 유산을 미리 받아갔지만, 방탕한 생활로 모두 탕진해버린 불효자였습니다. 그간 아들 주변에서 들려오는 추문을 정리하면 장편 드라마가 되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왔다고 동네잔치를 열었던 것입니다.
아픈 데 하나 없이 건강한 자신에게 유산을 받아간 아들, 소중한 재산을 순식간에 날려버리고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한 아들이 돌아오자마자 잔치를 벌인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아버지의 결정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퇴근길에 잔치가 열린 자초지종을 듣게 된 첫째 아들이 화를 주체할 수가 없어 문밖에 선 채 아버지께 화를 낸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첫째 아들은 “저 녀석이 허랑방탕하게 사는 동안 저는 아버지를 위해 일했고, 아버지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했는데 아버지가 저에게 해준 것이 뭡니까?”라고 항변했는데,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한 일은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줍니다. 아버지가 기다린 것은, 아들이 가지고 나간 재산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존재였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런 조건 없이 아들을 받아준 것도, 아들이 떠난 자리를 대신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가족의 소유가 아니라 가족의 존재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이 주는 혜택을 계산하는 마음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존재 자체를 고마워하는 마음입니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내셨던 이어령 박사님은 사랑하는 딸 이민아 목사님을 먼저 천국으로 보내야 했던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박사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따님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하나님 곁으로 갔으니 오히려 축복이 아닌가요?” 박사님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참 슬픈 것입니다. 딸아이가 살아있을 때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어도 언제든지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신이 떠나고 나면 천국까지 걸 수 있는 전화는 없습니다. 육체를 가진 생명이라는 것은 너무도 소중한 것입니다. 옆에 살아있어서 만질 수 있는 가족이 축복입니다”
이 시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손도 한 번 잡아봅시다.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입니까? 지난 시간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때도 있었고,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처럼 마음의 자리를 치워버리려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고, 가족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이 시간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고 구원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조건 없는 사랑과 섬김으로 서로에게 다가갑시다. 잘났든지 못났든지, 나에게 도움이 되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살아있어서 지금 나와 함께해주는 가족의 존재로 인해 기뻐합시다. 이 기쁨이 바로 천국의 기쁨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선물,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축복을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계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있는 그대로 우리를 용납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국제신학교육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