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의 태연함과 의연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한 해의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12월은 성찰과 정리의 달이다. 깨닫지 않으면 은혜가 없다. 정리하지 않으면 새로워질 수 없다. 고난과 역경, 실패와 좌절은 연단의 섭리라고 성찰하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 12:11∼13). 원망과 증오, 소외감과 패배의식은 분리수거해야 한다. 정리하지 않으면 약속의 땅이 없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 14:28∼30).

 최근 한 일간지가 ‘올해의 책 10’을 선정하면서 키워드를 성숙과 성찰로 규명했다. 광속의 시대 삶의 의미는 찰나의 성공이 아니라 끊임없는 성장이라는 교훈을 주는 책들이 주목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들이 꼽은 올해의 책 공동 1위로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와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발표했다. 내면의 성숙과 성찰이 삶을 의미 있게 하고 가치있게 한다는 것이리라. 돌이켜 보면 소유보다 가치가, 향유보다 의미가, 군림보다 섬김이 인생을 인생답게 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삶의 존귀함을 상실한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성찰과 정리의 핵심은 ‘감정’이다. 올 한 해 사람의 감정이 이 시대, 사회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정의 발화가 갈등과 불행, 분쟁과 파멸을 일으켰다. 사람들의 심성은 날로 과격해지고 조급해진다. 분쟁의 소지가 있을 때 격발성 분노부터 터뜨려야 권익을 선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보다 ‘어떻게 그럴 수가?’하는 감정이 필수 조건이 되었다. 사라져가는 생태계처럼 평안과 여유, 이해와 안정이 마음에서 파괴되어 간다.

 이 시대 큰 은혜는 첫째 구원의 선물이며 둘째 감정의 순화, 샬롬의 축복이다. 의인이었던 욥은 사람들이 형체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욥 2:12), 신음이 물처럼 쏟아지고(욥 3:24), 뼈가 열기로 탈 지경(욥 30:30)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당했다. 그러나 욥에게 있어서 육신의 질병보다 더 큰 고통은 내면의 상처였다. ‘의인이 왜 이렇게 버림받아야 하는가?’(욥 30:19∼20)라는 감정은 욥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욥기에는 네 친구가 등장하는데 모두 변호사가 아닌 검사의 특징을 가졌기에 인과응보론으로 욥을 공격했다. 욥의 고통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욥기 결론 부분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나타나 창조물 중 하마 이야기를 하신다. “그것의 힘은 허리에 있고 그 뚝심은 배의 힘 줄에 있고”(욥 40:16), “강물이 소용돌이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 강 물이 쏟아져 그 입으로 들어가도 태연하니”(욥 40:23)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고 소용돌이칠지라도, 강물이 입 속에 들어올지라도 놀라지 않는 하마. 눈을 뜨고 있을 때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는 하마(욥 40:24). 하마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 그것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은 얼마나 귀한 존재이랴. ‘본래 힘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은 하마는 창조 섭리에 따라 요동치는 환경에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하게 지내거늘 욥 너는 왜 마음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고통에만 주목하고 있느냐? 나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창조주에게 주목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였다.

 성찰과 정리의 12월엔 하마가 되어야 한다. 고난에서 섭리의 메시지를 듣자. 감정의 퇴적물은 정리하자. 세상의 변화, 가중되는 고통과 주체할 수 없는 미움으로 감정이 소용돌이칠지라도, ‘내가 왜 혼자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입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할지라도 하마처럼 태연하게, 의연하게 창조주에게 모든 것을 맡기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신앙계 주간·여의도순복음광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