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 앞에서는 병아리를 파는 모습이 흔했습니다. ‘삐약삐약’ 소리에 이끌려 담벼락으로 다가가면 으레 종이상자 안에 가득 담긴 병아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앙증맞은 노란색 병아리들이 저마다 자신을 데려가 달라며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꼬마들은 숨겨두었던 비상금을 털어 병아리를 한 마리씩 사들고 돌아갔습니다.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물도 갈아주고, 좁쌀도 넣어주고 하면서 들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 있는 병아리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는 경험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먹이를 먹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쉬지 못하거나, 어느 날 아침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기 일쑤였습니다. 원인을 알지 못했고, 원래 아픈 녀석을 판 것 아닐까 하며 병아리 장수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일찍 어미 곁을 떠나온 병아리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원래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훨씬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생명과 죽음’의 기억은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은 학교 앞을 가도 병아리를 볼 수 없습니다. 대신 전문상가나 대형마트를 가면 됩니다. 진열장에는 병아리보다 예쁘고 화려하고 앙증맞은 온갖 새들이 가득합니다. 토끼, 고슴도치, 모르모트 등도 좁은 투명 진열장 안에서 자신을 어서 데려가라는 듯 손님들을 쳐다봅니다. 여느 상품을 사듯 돈을 내고 구입하면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서늘한 느낌을 숨길 수 없습니다.
생명도 상품이 된 세상.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잊은 채, ‘어차피 돈 주고 샀으니까 죽으면 또 하나 사지’ 하는 식의 그릇된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기르는 목적은 다양할 수 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존재를 허락하신 생명 중에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버릴 만한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작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길 수 밖에 없습니다.
나신하 기자(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