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IS에 의한 파리 동시다발 테러로 충격에 빠져 있던 14일 토요일 오후, 서울 도심은 불법시위로 인해 마비됐습니다. 한국진보연대·민노총·전교조 등 53개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민중총궐기 대회’ 참석자들이 청와대 방면 진출을 시도하면서 경찰과 격렬한 공방을 벌였습니다. 수십 명이 매달릴 수 있는 밧줄과 사다리, 쇠파이프, 횃불 등 각종 폭력시위 도구가 동원됐고, 이에 맞서 경찰은 엄청난 양의 물대포와 최루액을 시위대를 향해 발사했습니다. 이를 두고 언론은 “서울이 아수라장이 됐다”(국민일보, 11월 16일자 11면)라고 표현했습니다. 더욱이 이 날은 시내 11개 대학 수시논술시험일, 12만여 명의 수험생들이 시위를 피해 제 시간에 고사장에 도착하기 위해 애를 태웠습니다.
사실 과격 폭력시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에 의해 교통이 방해 받고,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의 권위가 무참히 짓밟히는 경우가 속출해 왔습니다. 시민들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하고 막대한 유무형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국가이미지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두 말할 나위 없이 민주사회에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자유의 행사에는 공익과 법치존중이 전제되어야만 합니다. 대부분의 자유주의론자들도 사회 구성원의 개별성(Individuality)과 사회성(Sociality)의 적절한 조화를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흔히 기독교의 ‘황금률(Golden Rule)’로 불리어 집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상생과 화합의 정신이 기초가 될 때 공동체는 제 기능을 발휘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시위대로 꽉 막힌 길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속절없이 울어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도로를 점거해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앰뷸런스에 실려 급히 후송되고 있는 환자의 생명의 무게와 비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공동의 생활공간인 도심을 전장처럼 만드는 불법 폭력시위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됩니다.
김성동 장로(한세대 교수,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