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로에 위치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지난 12일 이곳에서 호머 헐버트 박사의 66주기 추모식이 드려졌습니다. 그는 명문 다트머스 대학과 유니온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1886년 23세의 나이에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박사님은 선교사이자 교육자, 언론인, 한글학자, 외교관, 항일독립운동가였습니다. 일제의 조선 식민지화를 저지하기 위해 고종황제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 부당함을 호소했고,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는 황제의 밀사로 파견돼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선생과 함께 일제의 패역무도함을 온 세계에 고발했습니다. 이러한 박사님의 항일투쟁은 1907년 조선에서 강제 추방된 뒤에도 강연, 청원, 집필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방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전개됐습니다.
그는 또한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 종합역사서 <한국사 The History of Korea>를 저술했고, 최초의 신문 <독립신문>의 창간에도 기여했습니다. 우리 민요 <아리랑>을 서양식 악보로 최초 채보한 분 역시 헐버트 박사였습니다.
“웨스터민스터사원 보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고 평소 말해 왔던 그는 소망대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한국에서 마감했습니다. 1949년 광복절 경축식에 국빈초청을 받아 방한한 박사님은 행사 며칠 전 홀연히 소천하고 말았습니다. 장례는 외국인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러졌으며 유해는 52년 전 한국 사역 초기에 병사한 첫 아들 쉘던의 무덤 곁에 안장됐습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영결식 조사를 통해 “헐버트 박사는 말이 미국사람이지 그 마음과 평생의 행동은 오직 우리 한국을 위해 일편단심 분투해 온 사람”이라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이 같은 헐버트 박사의 생애는 조선의 복음화를 위해 파송됐던 초기 선교사들의 고귀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 의료, 교육, 사회개혁으로 잠자던 이 나라에 역사의 새벽을 열었습니다.
광복 70주년, 건국 67주년을 맞았습니다. 오늘의 자유와 번영의 저변에는 선교사들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받은 은혜를 땅 끝까지 힘써 전하는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김성동 장로(한세대 교수,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