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프리카 사자 한 마리의 죽음이 전 세계인의 양심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짐바브웨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국민 사자 ‘세실’이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시체는 평소 머물던 국립공원에서 벗어나 있었고, 머리가 잘리고 가죽이 벗겨진 상태였습니다. 도륙의 장본인은 야생동물 사냥이 취미인 미국인 치과 의사 월터 파머였습니다. 6000만 원을 내고 현지 안내인을 고용해 세실을 40시간이나 쫓아다니며 사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자신은 합법적 사냥을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현지 전문가들은 세실이 공원 밖으로 유인돼 사살됐으며, 이는 밀렵꾼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반박했습니다.
13살 ‘세실’은 특별한 수사자였습니다. 짙은 검은 색 갈기를 뽐내며 암사자 6마리와 새끼 24마리를 거느린, 지역 생태계의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사람과의 교감을 즐겼고, TV 자연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었으며, 동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세실을 보기 위해 한 해 수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왔습니다.
파문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짐바브웨 당국은 사냥을 도와준 현지인 2명을 정식 기소하고, 파머의 신병을 자국으로 인도하라고 미국에 요구했습니다. 비난과 항의가 빗발치자 파머의 병원은 문을 닫았습니다. 야생동물 사냥의 중단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에는 순식간에 수십만 명이 동참했습니다. 유엔 총회는 193개국 만장일치로 야생 동식물의 밀렵과 불법거래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국제 사회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결의안은 각국에 관련법 개정을 주문했습니다.
세실의 희생을 계기로 아프리카의 사냥 산업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습니다. 짐바브웨에만 200여 개의 사자 농장이 있고, 해마다 900마리가 사냥으로 죽습니다. 현재 남부 아프리카에서 성행하는 사냥산업 규모는 연간 10억 달러, 우리 돈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마치 기념품이나 전리품을 과시하듯 사냥을 즐기는, 이른바 ‘트로피 사냥’이 유행하고 있고, 트로피 사냥꾼의 90%는 미국인입니다. 대부분 부유층인 이들은 비판 여론을 무시하고 있고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사냥을 합리화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생계와 생존을 위한 사냥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심심풀이 취미생활로 동물을 죽여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야생동물들은 일반적으로 배가 부르면 살생을 하지 않습니다. 취미로 살생을 즐기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습니다.
나신하 기자(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