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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6.25전쟁과 혈맹 미국



 “미국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국가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딸과 아들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미국 워싱턴DC의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관 기념비에 쓰여 있는 글이다.

 우리민족 최대의 비극인 동족상잔의 6.25전쟁 발발 65주년, 그리고 정전 62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통일을 소원하는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하며 적화통일을 꾀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은 크게 동요 하지 않고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다. 안보 불감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의 혈맹인 미국이 우리의 안보를 뒷받침하고 있기에 이런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 65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미국을 빼놓고는 6.25전쟁을 말할 수 없고 북으로부터의 도발을 억제하고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빛나는 기적의 역사를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기습 남침을 감행한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와 국민을 살리고 6.25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게 하였으며, 오늘의 한국을 건설하는데 크게 기여한 우리의 진정한 혈맹이며 은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하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미국의 일본에 대한 두발의 원자폭탄 투하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일본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서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자주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 또한 북괴의 기습 남침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미국이 주도한 UN군의 참전으로 적의 적화통일 야욕을 분쇄하고 승리함으로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1947년 9월 15일 미국은 “군사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낮다”고 평가하여 한국을 ‘애치슨라인’에서 제외하고 1949년 6월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시켜 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침 적화통일의 야욕을 실행하게 하였으나, 1950년 6월 25일  북괴군이 전면 남침을 개시하자 맥아더 장군의 건의에 의해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즉각 미국의 참전을 결정하고 일본 주둔 미 제24사단의 대대 급 스미스부대를 7월 1일 부산으로 공수하여 조기에 적의 남진을 저지토록하고, UN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여 UN군을 결성함으로서 미국을 비롯한 16개 참전국, 5개 의료지원국 등 총 63개국이 참전 또는 물자지원국으로 우리를 돕게 되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미국은 180만 명이 참전하여 5만4246명이 전사하고 10만3284명의 부상자, 7140명의 포로, 그리고 8177명이 실종되었으며 항공기도 1466대나 손실을 입었다. 16개 UN참전국 전력 중 지상군 50.3% 해군 85.9% 공군 93.4%가 미군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미군의 지휘 및 작전 통제 하에 이루어진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6.25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은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한국전쟁이 미국인의 전쟁이 되게 한 지휘관이었다. 그가 성공 가능성이 겨우 5000 대 1 이라는 인천상륙작전을 고위 지휘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하여 전세를 역전하고 위기를 극복한 쾌거는 이 민족을 사랑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당시 미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35명이 전사 또는 부상을 입었는바, 밴 프리트 장군, 아이젠하워 장군, 클라크 UN군 사령관 아들이 전사했으며,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장군은 아들과 함께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였고, 하버드 대학 출신 전사자도 17명이나 되었다.

 또한 전쟁 초기에 투입된 미 제24사단 예하 연대장이 부임 다음날 전사하고 사단 병력이 심대한 손실을 입었으며, 딘 사단장은 낙오되어 도피 중 한국인의 밀고로 인민군에 포로가 되었다가 후에 송환되기도 했다.

 정전협정 체결 후 한국의 경제난을 해결하기위해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물자는 전후 복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국은 1945년부터  1960년도까지 31억불의 원조를 제공했던바 이는 아프리카 53개국에 제공한 원조를 합한 것 보다 큰 금액이었다. 6.25전쟁 이후 1960년까지 년 4∼5%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우리 국민의 피나는 노력과 미국 원조의 힘이 컸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밀, 옥수수, 쌀,  보리, 밀가루, 분유 등 미국 잉여 농산물 지원은 고질적인 식량난을 해결하게 해주었고, 그 외에도 비료, 석탄, 석유, 원면, 돈육, 통조림, 헌옷, 담요, 소금 등 다양하게 원조를 받아 나라 살림을 꾸려갈 수 있었다.

 반면, 해방과 함께 신속히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은 닥치는 대로 부녀자를 겁탈하고 시계 등 귀중품을 약탈하였으며 공장 기계를 소련으로 뜯어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8.18도끼만행사건,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사건, 북핵위기 등 남북 간 전쟁 위협이 고조될 때마다 미국은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안전보장을 더욱 굳게 하였으며, 필요시 실제 군사 행동으로 공약의 굳건함을 보여 주었다.

 정전 후에도 연인원 485만 명의 미군이 한국의 안보를 위하여 주둔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미국의 도움과 미국 군인들이 흘린 피 값임을 우리 국민 모두는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벌어진 친북 반미 소동은 참으로 한심스럽고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최근 리퍼트 주한미국 대사에 대한 테러 등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북한의 계속적인 도발과 전쟁 위협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우리의 안보 파트너가 되어 전쟁억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 성장에 집중하여 오늘의 한국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기적의 나라가 된 것이다.

 또한 한국은 미국이 자유 수호를 위해 치렀던 많은 전쟁 중 자신들이 옳았다고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고, 우리 또한 미국의 요청이 있으면 지구촌 어느 곳 어느 분쟁 지역이든지 찾아가 함께 싸웠다. 우리는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피를 함께 나눈 혈맹관계이며 동반자 관계인 것이다.

 혹자는 이제는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중국과 더 가까워져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에 비하여 1인당 소득이 중국의 5배, 군사력이 10배나 되는 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의 전도사이며 오늘의 우리를 만드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혈맹 미국을 대신할 나라는 없다.

 북핵문제가 현실적인 위협으로 등장한 지금, 우리가 이 문제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통일 대박을 꿈꾼다면 굳건한 한미동맹은 필수적이며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기사입력 : 2015.06.21. am 11:53 (편집)
박환인 원로장로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