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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영산효행상 수상자 11인

 

효부상
신양순 권사(서대문대교구)
 신양순 권사는 남편을 잘 보필하고 1남 2녀 자녀들을 키우는 한편 시어머니와 시동생과 살며 믿음의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있다. 긍정적인 믿음과 순종, 충성으로 지역장으로서 15년 넘게 헌신하고 있다.
 신 권사는 13년 동안 치매를 앓고 계신 시어머님을 모시면서 짜증은커녕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믿음의 본을 보이고 있다. 13년이라는 오랜 세월이지만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지 않고 물심양면 보살피며 병세가 호전되기를 기도했다. 또 이혼 후 홀로된 시동생과 함께 살면서 가족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1남 2녀의 자녀들을 주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여 자녀들이 청년국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청년들로 자라났다. 두 딸은 믿음의 형제들을 만나 대를 이어 믿음의 가정을 세우고 막내 아들은 군대 제대 후 문서선교를 위해 국민일보를 미자립교회에 보내는 열심있는 청년이 됐다.


효부상

윤옥엽 집사(용산대교구)
 윤옥엽 집사는 병환 중인 시아버지를 20년 간 모시면서 효를 실천하고 있다. 아버지를 모시면서 직장 생활과 교회 봉사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시아버지는 질환과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윤 집사는 성심성의껏 아버님을 모시면서 오히려 오래 투병하시는 아버님을 안쓰러워하고 더 잘 보살펴 드리기를 소망하고 있다. 윤 집사가 시집오기 전부터도 투병해 오신 아버님이 아프신데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셨다며 친정아버지처럼 사랑으로 모신다. 25년간 신앙 생활한 윤 집사는 시아버지를 모시면서도 지역장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충성된 일꾼이다. 체육선교회에서 봉사부장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설거지 등 남이 하기 꺼려하는 궂은 일은 언제나 본인이 먼저 한다. 또 어려운 이웃돕기와 선교후원, 전도도 앞장선다.

효부상

윤영자 권사(용산성전)
 윤영자 권사는 1986년부터 교회 출석한 이후부터 시부모님을 지금까지 모시며 섬기고 있다. 시아버지가 암 투병 하실 때도 병간호를 하면서 남편 김정형 장로와 함께 구역장, 지역장 사명을 잘 감당했다. 아버님이 소천하신 후에는 시어머니 윤삼재 권사를 더욱 성심 성의껏 모셨다. 이후 남편 김정형 장로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7년 후 소천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소망을 바라보며 교회 봉사에 최선을 다했다. 수 십 년간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고 식당 운영을 하면서도 항상 기도의 일꾼으로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다. 또 아들을 신학대학교와 대학원까지 졸업 시켰다. 윤영자 권사는 용산성전에서 여선교회 지회장 3년을 마친 후에도 새신자 실장으로 충성스럽게 새신자들을 섬기며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장한아내상
박춘지 권사(서대문대교구)
 박춘지 권사의 남편 김기원 집사는 19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그 후 안타깝게도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중풍으로 발전해 몸을 가눌 수 없게 됐다. 그때부터 박춘지 권사는 남편의 식사를 챙기고 대소변 수발을 도우며 힘들게 살아왔다. 박 권사는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1남 4녀를 눈물의 기도와 말씀으로 기르고 늘 신앙과 생활에 최선을 다해왔다. 현재 77세의 고령인 박춘지 권사는 본인도 당뇨와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혈압과 심장병이 있고 심한 관절염으로 온 몸이 성한 곳이 없다. 본인 스스로 거동하기도 힘들지만 매주 두 차례씩 한번도 거르지 않고 남편이 병원에서 물리치료 받도록 하고 있다. 19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항상 남편의 옆자리를 지키며 사랑의 헌신을 하고 있다.

장한아내상

김옥석 권사(양천대교구)
 김옥석 권사의 남편 권규섭 성도는 1985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4.5톤 트럭에 치인 상태로 30∼40m를 끌려가는 사고를 당했다.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어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고 6년간 의식이 없는 상태로 지냈다. 김 권사는 남편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와 간호로 남편을 돌보았고 기적처럼 6년 후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남편은 거동이 불편해 1급 장애 판정을 받고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김 권사는 휠체어로 바깥 출입 조차 불편한 남편을 사랑으로 섬기며 30여 년을 살아왔다. 또한 김 권사는 30년간 가장의 짐을 지고 남편의 병수발과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세 아들을 양육했다. 김 권사는 힘든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교구에서는 기도의 일꾼으로서 교회와 교구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장한아내상

심효섭 집사(관악대교구)
 심효섭 집사는 16년 전 갑자기 쓰러진 남편을 돌봐온 장한 아내다. 16년 전 남편 박정근 집사는 운전 중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 의식 불명의 상태로 며칠을 중환자실에서 보내던 중 의식이 돌아왔다. 하지만 몸이 마비되고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심 집사는 운동도 시키고 좋다는 약은 어디든 가서 구해서 남편을 먹이는 등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병원에 있을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불가피하게 퇴원을 시켰고 집에서 남편을 수발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더구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심 집사가 장사를 해야했다. 여러 번의 고비와 흔들림 속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의지하며 다시 일어났고 그사이 자녀들도 결혼을 시켰다. 현재도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심 집사는 남편을 봉양하며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장한아내상

유순희 권사(강동성전)
 유순희 권사는 남편 배성윤 집사와 함께 솜사탕과 풀빵 장사를 하며 어려운 사정에도 십일조를 잊지 않으며 열심히 생활했다. 특히 자녀들도 신앙 안에서 키우며 믿음을 물려주었다. 그러던 2010년 남편 배성윤 집사가 딸을 시집 보낸지 얼마되지 않아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승용차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기적처럼 남편이 깨어나 여러 차례 뇌수술도 받았지만 뇌병변 장애 판정을 받으며 지속적인 치료를 필요로 했다. 유 권사는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5년 동안 요양원에 맡기지 않고 직접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다. 배 집사는 점차 사태가 호전되고 있으며 매주일 아들의 도움을 받아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맞이하는 유 권사는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정승환

장한남편상
유경호 장로(동작대교구)
 유경호 장로는 1966년부터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해 82세인 지금까지도 주일성수를 잊지 않으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부인 이정희 권사와 함께 늘 헌신적으로 교회 일에 앞장서 많은 성도들이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7년 전 이정희 권사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유 장로가 모든 수발을 책임지고 있다. 구청에서 요양보호사를 보내주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어 현재 유 장로는 본인인 혼자 살림과 간호를 도맡아 하고 있다. 7년째 혼자서 매일 부인의 목욕과 기타 간병을 하고 식사 준비를 하면서도 절대 감사의 신앙으로 감당하고 있다. 사실 연세가 있다보니 힘들 때도 있어 병원에서 침을 맞기도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천국의 소망만을 품고 기쁨으로 간병하고 있다.


장한 남편상

김명진 성도(용산성전)
 김명진 성도는 1997년 아내 김정순 성도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이후 지금까지 18년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 특히 아내의 병세가 파킨슨병으로 더욱 악화되어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앉는 것도 불가능하고 정상적인 대화가 힘든 상황이다. 심지어 먹는 것도 호스를 통해서만 가능할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김 성도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같이 아내를 찾아가 손과 발을 닦아주며 찬양과 기도는 물론 주일 설교 말씀도 전해주고 있다. 그는 83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은 물론 봉사자가 부족하다는 얘기에 3년동안 남선교회에서도 봉사하고 있다. 한편 김 성도는 6.25전쟁 참전 상이용사로 지난해 처음 우리 교회에서 상을 받은 것을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가족과 자녀, 친지 등은 물론 이웃에게도 전도에 앞장서고 있다.   

훌륭한어머니상

김태남 집사(장애인대교구)
 
 김태남 집사는 산골 가난한 소작농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돈벌러나간 오빠와 연락이 되지 않자 18세에 대구로 가서 공장 일을 하며 어머니와 가족의 생활비를 보내 동생들의 학업을 책임졌다. 20년동안 결혼도 포기한채 4명의 동생들을 결혼시켰고, 40세가 넘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분식점 등에서 일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 비록 식은 안올렸지만 서로를 위로하면서 지냈다. 43세에 아이를 가졌지만 무책임한 남편은 편지 한 장만 남겨놓고 말없이 떠나버렸다. 아이를 낳을지 고민하다가 팔촌언니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했고,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에 아이를 낳았다. 소망과 위로가 되어준 딸 은혜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 간과 폐 심장 등의 기능을 잃어갔다. 아이의 큰 수술과 인생의 시련 앞에서 신앙을 지킨 김 집사는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 큰 사랑을 체험했다. 어머니의 믿음으로 딸 은혜가 기적으로 깨어났고 두 모녀는 서로 사랑으로 의지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효녀상

조미숙 집사(반석대교구)
 공무원인 조미숙 집사는 2001년부터 우리교회 지역장으로서 성실함으로 지역과 구역원을 섬겼다. 그러던중 2005년 친정어머니가 파킨슨 병과 치매에 걸려 거동마저 불편한 상태가 됐다. 형제들이 모두 외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라기보다 이름만 불러도 가슴 뭉클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간병하며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통원 치료를 받아왔다. 조 집사는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돌보는 과정에서 느낀 후회, 아픔, 절망, 사랑의 경험을 혼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슷한 처지의 성도들이나 이웃들에게 경험을 전하면서 그들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해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조 집사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2010년 어머니는 고열과 감염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다행히 어머니는 현재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조 집사는 이틀에 한번씩 요양원을 찾아가서 어머니를 돌보면서 같은 처지의 환자들에게도 사랑을 전하고 있다.

 

기사입력 : 2015.05.03. am 12:39 (편집)
특별취재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