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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슬람은 기독교와 비슷한 종교인가?



 우리가 지난 5주간에 걸쳐 이슬람에 대한 글을 연재해온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반기독교적이며, 반문명적이며, 따라서 반한국적인 이슬람이 우리나라에 쓰나미처럼 밀고 들어오는 것을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전 사회가 정확히 인식하고 이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슬람이 일으키는 각종 문제는 먼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살펴본 바 있다. 이슬람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종교인들이 밀물처럼 들이닥쳐 산업계, 학계, 지방도시 등을 이슬람의 녹색 물결로 뒤덮으려 하고 있고, 여기에 수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들까지 가세함으로써 국내 이슬람교도 숫자가 20만명을 훌쩍 넘은 상태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 아프리카, 미국, 아시아, 호주 등 무슬림이 가는 곳마다 일으키는 무자비한 테러에 관한 소식이 매일 새롭게 업데이트 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만을 비껴가도록 바라고 있을 수는 없는 실정이 되었다. 급기야 지난 4월 11일 아프리카 리비아의 한국대사관이 이슬람 테러분자들의 기관총 공격을 받아 경비 담당 경찰관 두 명이 사살되는 참극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슬람의 위험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세력을 더 확장하기 위해서 이슬람은 기독교와 비슷한 종교라고 선전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이슬람은 기독교와 어떤 점에서 다르며, 왜 우리가 이슬람을 경계하고 배격해야 하는지 그 근본적인 교리와 신앙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슬람의 가장 큰 거짓말 :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비슷한 종교?’


 우리나라와 같이 이슬람교 세력이 기독교인들의 숫자보다 훨씬 적은 나라에서 이슬람이 반드시 쓰는 전술이 있다. 그것은 ‘기독교의 하나님이나 이슬람교의 알라는 같다’라는 거짓 선전술이다.

 그리하여 한글로 된 문서에서는 반드시 ‘알라’란 이름을 숨기고 ‘하나님’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마치 이단 중 하나인 안상홍증인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들은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 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을 언급함으로써 전혀 생소한 이교(異敎)나 사교(邪敎)가 아니라 기독교와 거의 비슷한 종교임을 강조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다.

 이들이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윗과 같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언급하고, 심지어는 예수님까지 들먹이지만, 이들의 말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기독교의 성경은 왜곡된 ‘가짜 계시’이며, 오직 쿠란만이 완전한 ‘완전한 계시’라고 주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예수님을 계시를 받는 선지자의 하나로 격하시킬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받으신 계시조차 무함마드라는 자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열등한 것으로 폄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한국 이슬람교’ 웹사이트(www.koreaislam.org)에서 ‘이슬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무슬림들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예언자들에게 계시한 성서들, 예컨대 모세의 구약, 다윗의 시편, 예수의 신약, 무함마드의 쿠란을 믿는다. 쿠란은 특히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예수에게 내려진 경전들을 언급하고 있다. 쿠란이 계시되기 오래 전에 이런 경전들과 계시의 일부가 이미 소실되거나 왜곡되었으며 혹은 감추어졌다. 현존하는 하나님의 경전으로써, 첨삭없이 보존되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쿠란뿐이다”  

 이 짧은 인용문에도 엄청난 왜곡과 기만이 곳곳에 숨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1) ‘하나님’, ‘성서’, ‘구약’, ‘신약’,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예수’, ‘계시’, ‘경전’ 등 우리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명칭을 버젓이 사용함으로써 미혹하고 있다. (2) ‘모세의 구약, 다윗의 시편’ 뒤에 ‘예수의 신약’을 추가함으로써 예수님의 위치를 구약의 모세나 다윗의 위치로 슬그머니 내려놓는 것을 볼 수 있다. (3) ‘모세의 구약’이라는 표현도 왜곡된 것이다. 모세 오경은 다윗의 시편, 그리고 다른 시가서, 역사서, 예언서들과 함께 구약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4) ‘무함마드의 쿠란’을 ‘모세의 구약, 다윗의 시편, 예수의 신약’ 뒤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슬그머니 집어넣음으로써 마치 그것이 신구약과 같거나 심지어 능가하는 경전임을 은근히 주장하고 있다. (5) 기독교의 성경을 자의적으로 나열해놓고서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것이 소실 또는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역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함마드의 쿠란을 완전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계시라고 함으로써 기독교와 전혀 관계없는 ‘사교’로서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한 마디로 기독교 성경은 왜곡된 계시이고, 이슬람의 쿠란이야말로 하나님의 완벽한 계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기독교인들을 증오, 혐오하여 말살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자신들이 소수인 곳에서는 이슬람은 평화를 사랑하고 기독교와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다수인 지역에서는 그들의 본색을 드러낸다. 지난 4월 2일 케냐 북동부에 위치한 가리사 대학교 기숙사에 이슬람 테러분자인 알샤바브 테러범들이 새벽에 난입해서 기독교도만 골라 148명을 살해한 것은 이슬람의 전형적인 행태를 보여준 사건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슬람교는 기독교와 전혀 다른 타종교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종합적인 결론 - 연재를 맺으며


 이슬람의 본산인 중동지방의 격언 중에 “낙타의 코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추운 밤에 낙타가 텐트 밖에서 덜덜 떨고 있는 것이 불쌍해서 코만이라도 텐트 속으로 넣어서 녹이라고 배려를 해주었더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머리를 들이밀고, 그 다음에는 목을, 앞다리를, 몸통을… 나중에는 사람을 밀어내고 텐트 속으로 들어온다는 말이다. 지금 한국의 이슬람 상황은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서 낙타가 코를 들이밀더니 급속도로 그 큰 덩치를 들이밀고 있는 형국이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우리가 텐트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최근 지은 지 40년 된 서울 한남동 이슬람 사원을 헐어버리고 터키의 종교부가 350억원을 들여서 새롭게 설계하고 건축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나라의 이슬람 사원 하나를 증개축하는 문제를 전 세계의 이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의 주요 도시마다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서 현재 15개의 사원이 있고, 80여 개의 소위 ‘기도처’가 있으며, 대학, 대학원마다 이슬람권 유학생들이 들어와서 이슬람 ‘기도처’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이슬람 율법을 따라 만든 음식인 할랄 음식을 만들고 먹을 이슬람 식당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학교마다 이런 시설들을 만들고 있다. 막대한 석유 자본을 기반으로 한 중동의 경제력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러한 ‘오일 머니’와 함께 이슬람의 반기독교적, 반문명적, 반한국적 폐해도 함께 들어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실로 통탄할 일이다.

 이제는 어느 곳을 가든지 히잡을 쓴 외국 여성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다문화 가족을 배려하자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이슬람교도와의 결혼, 한국 정착이 그 어느 때보다 쉬워진 상황이다.

 할랄 음식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이슬람 국가에 할랄 식품을 수출하면 경제적인 이익이 상당하다는 소문에 ‘죠O퐁’ 같은 오래된 어린이 과자마저 할랄 인증을 받았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터키 음식인 ‘케밥’(물론 할랄 음식)을 세계화의 상징인양 즐기고 있다. 

 성경은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말씀하고 있고,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한 것이 나중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슬람과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는 이슬람 과격파들이 반문명적, 반인륜적 테러를 일삼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우리나라에 가장 큰 잠재적 위협이 될 요소이다. 70년째 지구상에서 가장 예측이 불가능한 집단인 북한을 상대하는 데도 전 국가적인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슬람 테러까지 안보 위협 요소로 등장한다면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불문가지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의 이단이 아닌 완전히 다른 종교이다. 기독교 복음을 제대로 알고 믿는 사람은 이슬람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부활의 메시지는 그들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참되고 고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독교 진리 가운데 바로 설 때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굳건히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


<국제신학연구원>

 

기사입력 : 2015.04.19. am 10:34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