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항공사의 여객기들은 방콕의 스완나품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돈므앙 공항을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별로 볼만한 것도 없는 데다가 비행 시간이 자주 바뀌므로 신 선교사 가족은 곧장 7번 게이트로 향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소라 엄마가 주위를 둘러보며 소근거렸다.
 “같은 저가 항공인데 뭐가 다르겠어?”
 주포 교회의 후원 받는 것이 미안해서 그는 늘 모든 비용을 절약하려고 애를 썼고, 그런 사정은 가족들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라 엄마는 유난히 어린 아이들이 많은 승객들 가운데 눈빛이 좀 특이한 두 명의 사내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들의 노란 티셔츠 소매 끝에는 작고 까만 글자로 ACP가 찍혀 있었다.
 “ACP가 뭘까요?”
 “글쎄… 아프리카, 카리브, 태평양 국가 연합인가?”
 “저들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아요.”
 “외모가 다른 사람을 보면 대개 낯설어 보이게 마련이지.”
 그의 말대로 7번 게이트에는 인도의 펀자비나 미얀마의 론지를 입은 낯선 여인들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깜보도 입양 전에는 외국인이었다. 소라 엄마가 그래도 두 사내의 거동에 신경을 쓰는 사이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양곤으로 가시는 승객들께서는 지금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콕까지는 네 식구가 나란히 앉아서 왔는데 이번에는 앞 뒤로 두 명씩 앉게 좌석 이 배정되어 있었다. 신 선교사는 앞쪽에 소라와 아내를 앉히고, 자신은 깜보와 함께 뒤에 앉았다. 비행기가 순항 고도에 이르러 좌석 벨트 싸인이 꺼지자 그는 시트 테이블을 내려 놓고 미얀마 입국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패밀리 네임, 신… 기븐 네임은 경환.”
 “참, 아빠. 우리는 어디 신씨에요?”
 본래 미얀마 사람은 성이 없고 이름만 있어서 깜보의 이름도 그것이 다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신경환의 아들로 입양 되었기 때문에 성이 생겨서 신깜보, 한자로 쓰면 신감보(申甘步)가 되었던 것이다. “김해 신씨.”
 “네?”
 자신의 성이 생겼으므로 깜보도 관심을 갖고 신씨의 본관들을 알아보았으나, 평산 신씨나 고령 신씨는 있어도 김해 신씨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나도 좀 알아보았는데, 그 유래는 잘 모르겠더구나.”
 “도대체 김해 신씨가 몇 명이나 되지요?”
 “그것도 모르겠어.”
 거기까지 듣고 있던 깜보는 오줌이 마려워서 일어섰다. 뒤쪽 화장실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많아 한참을 기다려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볼일을 다 보고 물을 내린 후 손을 씻고 있는데 기체가 잠시 흔들리는 것 같더니 정면에 빨간 글자가 떴다.
 “좌석으로 돌아가세요.”
 손을 씻은 종이 타올을 휴지통에 넣고 도어를 열려고 하는데 기체가 몸부림을 치며 곤두박질을 하는 바람에 깜보는 넘어지며 화장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뭐지…?”
 갑자기 밖이 소란해지면서 비명 소리와 함께 기내 방송이 들렸다.
 “여러분, 좌석 벨트를…”
 그러나 그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천지가 다 무너지는 듯 요란한 폭음에 뒤엉켜서 그 소리도, 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그리고 항공기의 엔진 소리마저도 한꺼번에 다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