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영 성도(장년부) - “암 이기고, 건강한 아이 주셔서 감사” |
젊은 나이에 유방암 재발했지만 완치 판정 항암하면서도 절망 않고 직장생활 계속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나니 재미있는 것들이 도처에 잔뜩 있었다. 나는 열심히 일하고 계절마다 다양한 스포츠와 레저를 즐기며 살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주일에 교회를 자주 안 가게 됐고 하나님은 내 마음속에만 계신 분이 됐다.
33세가 되던 2002년. 수영을 다니던 중 너무 피곤함을 느껴 병원을 찾았는데 미혼인 내게 유방암이라는 검사 결과가 내려졌다. 내 마음은 담담하기만 했다. ‘엄마 다녀올게’ 웃으면서 수술실에 들어가 6시간의 수술로 종양을 제거했고 항암치료를 6번 받게 됐다. 한달에 한번 하는 치료는 참 힘들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구토를 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방사선 치료를 받고 직장 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항암 치료를 다 받았는데 수술 부위에서 딱딱함이 느껴졌다. 정기검진 때 보니 맙소사 재발이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기 시작했다. 기도 중 가족들과의 상의 끝에 가까운 곳으로 병원을 옮기자고 했다. 국립암센터로 옮겼고 의료진들이 회의를 해 항암치료를 먼저 해보자고 결정하셨다. 그런데 처음 받았던 항암치료보다 약이 더 독할 거라고 하셨다. 머리카락은 물론 손발톱이 다 빠졌다. 헐거워진 손발톱을 종이테이프로 칭칭 감고 장갑을 끼고 일을 하는데 정신력으로 버티면서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때때로 40도가 넘는 고열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자식의 고통 앞에 엄마가 행여 무너질까 엄마가 안계실 때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홀로 고통 속에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하나님 차라리 저를 데려가세요” 한 시간 가량 목 놓아 울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나를 죽이시지는 않겠지’라는 희망이 생겼다. 항암치료를 세 번 했을 때 수술날짜가 잡혔다. 이번에는 한 시간 반만에 수술이 끝났다. 가슴도 보존했고 조직검사 결과는 1주일 뒤에 나온다고 했다. 검사 결과를 하루 남겨 놓은 날 수요예배를 갔다. 그때 조용기 목사님이 설교하시고 통성기도를 인도하셔서 기도를 하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는 중에 내 입에서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를 치유해주었다”라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튿날 수술이 잘되었다고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를 들었다. 기도 중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기도 했다. 그때부터 정기 검진을 3개월에 한번씩 이후에는 6개월, 1년마다 받으면서 5년이 흘렀다.
완치 판정은 받았지만 평생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0년간 소홀 했던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이었고 교회 청년부에 소속 돼 즐겁게 봉사했다. 그러다 좋은 사람을 교회에서 만났다. 교제가 깊어질 것 같아 드디어 내 이야기를 했다. 얼마 후 그에게 연락이 왔다. 처음엔 충격 받고 놀랐지만 두 시간을 기도하는데 눈물이 흐르더라고. ‘혼자 얼마나 힘들었겠니. 네가 함께해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혼 4개월 쯤 됐을 때 배가 아팠다. 수술 후 생리도 불규칙해졌는데 혹시 하는 예감에 임신테스트기로 검사를 했다. 정말 임신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결혼하고 나서 엄마가 나의 임신을 위해 40일 작정 새벽예배를 드리셨다고 했다. 임신과 출산에 우려가 많았지만 주변에서 엄청나게 기도를 많이 해주셨고 나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가장 감사한 것은 모유수유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수술하지 않은 한쪽만으로도 3개월 출산휴가 후 복직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무려 15개월을 먹였다.
지금 이 순간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밥을 먹고 숨을 쉬고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절망은 없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항상 용기를 주신 주치의 선생님께도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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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 2015.02.08. am 10:16 (입력) 복순희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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