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의 험악한 역사를 넘어 완생(完生)의 영광으로
- 크리스천은 영화 ‘국제시장’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고난의 역사 겸허히 반추하며 내일 열어가야
세계선교 밀알된 아버지 세대 본받아 사명 계승
  
 영화 ‘국제시장’이 새해 첫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산업화 세대가 기억하고 싶은 추억만 간추려 신파조로 엮은 저급 영화’,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보수 우파의 기획상품’이라는 일부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연일 사람들이 ‘국제시장’에 몰려가 ‘감동구매’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핏줄의 생존을 지키는 아버지 세대의 숭고한 희생과 순수한 사랑이 세대를 초월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이 해체되고, 외양이 화려한 디지털시대일수록 ‘시냇물을 찾는 사슴’처럼 가족의 원형을 회복하고, 내면의 근원적인 정감을 갈급해하는 것이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 할 때 바로 이 영화가 ‘사슴이 찾는 물’의 역할을 한 것이다.

 모든 사회현상은 역사의 양장이며 발자국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눈보라치는 흥남부두’처럼 대한민국은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한랭기의 현실을 맞았다. 그 상징을 보여주는 것이 윤덕수 일가의 삶이다. 흥남철수의 배 안에서 비극적으로 아버지와 여동생을 생이별하는 어린 덕수는 한 순간에 가장의 존재를 상징하는 두루마기를 아버지에게 물려받고, 아버지가 유언처럼 당부한 부산 국제시장으로 피난, 고모 가게인 ‘꽃분이’를 찾는다.

 쓰레기더미에서 장미를 찾듯, 고난의 현장에서 내일을 희구하는 상징이 꽃분이일까. 덕수의 ‘꽃분이 시대’는 고통과 시련, 혼란과 좌절의 한국 현대사의 압축이다. 특히 전쟁 이후, 한국사회가 산업화로 급격하게 전환되면서 다양한 위경에 직면하는 현실 가운데 덕수는 그 현장에서 온 몸으로 ‘위험한 변화의 물결’을 맞는다.
 올 초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그의 명저 ‘위험사회’(1986)에서 “서구 중심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위험사회를 낳는다”고 경고했다. 그야말로 위험사회에서, 전쟁의 길고 긴 후유증까지 앓고 있는 상황에서 덕수는 처절한 현실을 헤쳐나아가야 했다.

 주전 600년 경 에스겔 선지자는 황량한 벌판에 사생아처럼 버려진 유다 민족을 향해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겔 16:6)라는 야훼의 말씀을 대언했다.

 어디 덕수 일가뿐이랴. 당시 한국 사회는 피투성이된 채, 모진 목숨을 이어갔다. 덕수는 진학도, 선장의 꿈도, 최소한의 경제 보장도 포기한 채 피난민의 생존 자리매김을 위해 피투성이로 산다. 그는 파독광부, 월남기술자 파견을 자처하고 가족의 품을 떠난다. 독일에서 광산 폭발사고, 월남에서 총격전을 겪지만 ‘기가막힌 웅덩이’에서 살아난다. 덕수의 생존은 격변기 한국의 생존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영상은 최근 크게 번영한 한국 현대 사회를 조명한다. 어느새 70대 초반에 이른 덕수. 아버지는 찾지 못했지만, 미국에서 전쟁고아로 입양된 채 살던 여동생 막순이를 찾고, 꽃분이네 상점을 지키던 덕수는 비로소 그렇게 고수하던 가게를 내놓고 생존 보전의 상징인 아버지의 두루마기를 끌어안고 고백한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 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 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 예” 덕수의 고백은 족장시대 대가족을 책임진 야곱의 고백을 떠올리게 한다. 야곱은 말년, 죽음을 앞두고 그렇게 찾던 아들 애굽의 국무총리 요셉을 만난 후 제국의 왕 바로 앞에서 이렇게 인생 여정을 토로한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

 힘들었던 삶과 험악한 세월. 월남 파견 기술자인 덕수가 강가 나루 총격전에서 총상을 입고 다리를 다쳤듯, 야곱도 홀로 남은 얍복강 나루에서 허벅지 관절에 치명상을 입는다. 환도뼈인 허벅지 관절은 고대 근동 문화에서 남자들이 이 뼈에 손을 얹고 서로 서약할 정도로 삶의 중심을 상징한다. 다리를 다친 야곱과 덕수. 험악한 세월, 고단한 역사의 상흔이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격변기의 역사를 지나온 어른 세대는 ‘힘들고 험악한 상흔의 세월’을 살았다.
 2015년, 오늘날 ‘핏방울이 묻힌 빛바랜 흑백사진’같은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첫째, 복음전래 130주년, 광복 70주년, 한일외교 50주년이 되는 이런 때 겸허하게 고난의 역사를 반추하며 내일을 열어가라는 것이다. 유대민족은 선민사상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가운데 힘들고 험악했던 고난의 역사를 반추했다.
 “쓴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민 9:11)

 ‘죽음을 뛰어넘은 유월절’을 기념하는 음식은 어린양 고기와 누룩이 없는 무교병 그리고 쓴나물이었다. 쓴나물은 험악한 역사를 되새기며 야훼의 은혜 앞에 겸허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는 ‘피투성이 역사’를 생각하며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 아직 우리는 분단의 최후 국가라는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분단의 아픔을 통일의 영광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둘째, 한 알의 밀알처럼 헌신과 희생으로 역사와 핏줄의 생존을 지킨 아버지 세대를 기억하고 소중한 가치로 여겨야 한다. 그것은 어디 사회적인 면뿐일까. 한국교회도 130년 전 목숨을 아끼지 않고 ‘땅끝 조선’을 찾은 선교사들을 비롯, 한국교회 부흥, 세계선교의 밀알이 된 ‘아버지 세대’의 목회자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교회와 함께 선교의 사명을 계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제시장’엔 아픈 역사만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희망의 메시지가 없다.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미생(未生)의 현장’만 있지 ‘완생(完生)의 희망’은 없다. ‘덕수의 탄식’만 있지 ‘브니엘의 야곱’은 없다. 다리를 다친 덕수가 ‘힘들게 살았다’는 고백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러나 허벅지 관절을 다친 미생의 야곱은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축복을 받고(창 32:29) ‘완생의 아침’ 브니엘의 영광을 맞는다. 절망의 밤을 보내고 희망의 아침을 맞은 것이다. 크리스천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이 아쉽다. 그렇지만 우리는 ‘국제시장’의 여운과 여백에서 보이지 않는 면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험악한 세월을 견딘 대한민국 역사의 찬란한 내일이며, 고난을 딛고 회복되는 공동체의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