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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역설 - 유경민 목사(동작대교구장)
 로마인들에게 어깨를 감싸던 ‘토가’라는 것이 있는데 신분을 나타내는 과시용 의상이다. 토가는 자색과 황금색은 황제에게만 허용됐고, 관리는 두 가지 색, 농민은 한 가지 색의 토가를 입었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 역시 명품의류와 가방, 시계와 같은 액세사리들이 자신을 과시하는 ‘토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생 10명 중 7명이 짝퉁 명품을 소유하고 있다니 고대로부터 현대사회까지 인간의 과시욕은 변함이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배기량이 크고 과시하기 좋은 차를 선호하는 중국 부호들이 독일제 고급차를 사들이면서 BMW는 2분기 영업이익(13억 유로)의 90%를 중국시장에서 올렸다고 한다. 인간의 과시욕이 돈이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유대인들은 기도하는 동안 경문을 하나는 이마에 붙이고 하나는 왼팔에 붙인다. 경문은 양피지 두루마리에 율법 4구절을 기록하여 가죽 함에 넣어 꿰맨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고자 시작된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열심과 경건을 사람들에게 과시하고자 경문의 띠를 넓게 하여 사람들에게 존경 받기를 원하는 과시욕의 도구가 됐다.

 이러한 과시욕이 서열화 되면서 사람들은 수치에 민감하게 되었다. 자녀의 키, 수능점수, 남편의 연봉, 아파트 평수, 자산의 규모, 실적 등 모든 평가기준이 수치로 환산되고, 교육과정에서부터 수치에 의한 서열이 사람들에게 의식화되었다. 그리고 서열의식은 자연스럽게 비교의식을 낳게 되고, 더 높은 서열을 향해 서로 경쟁하는 무한경쟁의 사회구조를 만들었다. 고린도전서 1장 12절에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교회 안에도 분파가 있었으니 이러한 분리집단의식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과시욕과 서열의식, 과도한 경쟁주의 그리고 당파를 나누는 집단의식에서 벗어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 겸손이란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주님 앞에‘주님 제 능력이 여기까지입니다’고백하며 엎드려야 한다.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 은혜는 우리가 무얼 해서가 아니라 우리로써는 감히 이해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일 뿐’이라고 했다. 우리는 성경과 신앙서적을 읽고, 기도 드리고, 봉사하며 무엇인가를 한다고 하나님 앞에 괜찮게 살고 있다 말할 수 없다. 겸손은 자신의 한계를 자각함으로‘내가 무엇을 했다’는 과시욕과 나아가 서열의식, 경쟁주의와 분리집단의식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주시고 서로의 발을 씻어주라고 교훈하시면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27)고 하셨다. 인간의 과시욕으로 비롯된 이 사회의 서열의식과 경쟁주의, 분리집단의식을 향한 하나님나라의 역설이다.
 

기사입력 : 2014.12.21. am 10:55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