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으론 불완전하다는 생각에 결혼을 했다는 사람도 많지만 결혼을 해서 더 불안해졌다는 사람도 많다. 결혼은 완전함을 위해 또는 안정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결혼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끝내는 것도 정당하지 못한 복잡한 결정이다. 손발이 척척 맞고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 보이는 부부를 보면 한없이 부럽기만 하고 결혼을 해도 배우자가 없는 듯 기능적으로 불만족하거나 서로의 필요를 채워 줄 배우자와 함께 할 절대적 시간이 부족한 요즘의 현대 가정 안에선 결혼을 해도 외롭거나 불편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가 또 가족이고 부부이다. 그렇다면 나는 결혼을 잘못한 것일까?
물이 담긴 컵을 보며 물이 반잔만 남았다고 불평하기보다 물이 반이나 남아 있구나 사고하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인식의 변화가 우리 삶의 변화에 중요한 것처럼 결혼생활 특히 부부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있는 ‘결혼은 이러했어야 한다’ ‘부부는 이러해야 한다’는 식의 마음의 거울이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비추고 외롭게 인식하게 하는 것은 없는지 진단해 보고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해야 한다’는 배우자와 부부에 대해 설정해 놓은 기준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직븡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주관적 차원에서 기준을 세운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준 또는 규준은 개인의 주관적 신념과 가치를 강하게 내포하게 된다. 결혼한 사람들은 가족생활, 배우자, 자녀, 시댁 등에 대해 다양한 규준들을 세운다. 흔히 한국 사회에 통용되는 규준을 예로 보면 “싸우지 않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다” “부부싸움도 버릇이 되므로 절대 싸우지 말아야 한다” “부부관계는 공평하고 평등해야 한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 등이 있다.
이러한 규준들은 결혼생활을 방해하는 나쁜 소리들이 아니다. 오히려 풍요로운 결혼생활에 도움을 주는 소리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규준들이 결혼생활의 올무가 되어 자연스러운 삶의 질서가 아닌 지나친 책임과 의무와 속박에 묶이게 되는 경우이다. 내담자였던 한 여성은 직업이 의사였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서울로 유학도 오고 전문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학업과 일에만 몰두하다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 또한 늦어지게 되었다. 배우자는 대학교수이지만 자녀의 학비나 주택마련 등 굵직한 돈은 모두 여성이 번 돈으로 해결해야했다. 결혼을 해서 더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았다기보다 밥하고 살림까지 챙겨야 하는 부담만 늘었다고 생각한 그녀는 이혼을 결심했지만 때마침 배우자의 발병으로 수술과 회복을 도우며 이혼결심도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결혼은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자신의 삶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너무나 불행해 보였다. 그녀가 불행감을 느끼는 것이 과연 결혼을 잘못했기 때문일까? 자신이 간호하고 보살펴야 했던 대상이 차라리 자신을 위해 고생하고 수고했던 부모였다면 같은 돈과 시간을 써도 아깝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여자의 삶이 남편 하나 잘못 만나 이와 같이 불행해졌다 느끼는 데에는 ‘남자는 강해야 한다’ ‘남편이 경제적으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재된 결혼 규준에 자신의 삶이 맞지 않다는 사실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상은 남성의 경제적 능력과 여자의 외적인 아름다움이 부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하지만 남성인 자신이 경제적 부요함을 갖추고 있지 않고 여성인 자신이 외적인 아름다움에서 경쟁력이 없다면 나는 이러한 사회적 메시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자신의 삶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고 삶에 적용해야 한다. 산에 오르는 이유가 정상에 올라가 ‘야호’ 부르고 내려오는 것에 있다면 등산의 맛을 충분히 모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준비하는 과정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 마다 경험되는 풍경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고 다른 이유로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다시 내려와야 할 때에도 실패라고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여성 또는 이런 남성 만은 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결혼규준을 위협하는 배우자를 만났다 생각한다면 중앙에 예시된 잘못된 결혼규준 중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결혼규준을 찾아보고 현재의 자신의 삶에 맞는 새로운 가치 기준을 형성해 가는 생각의 변화, 인식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 보자. 모르는 것이 약일 때도 있고 아는 것이 힘일 때도 있는 것처럼 어느 하나의 기준이 우리 모두의 삶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 자신의 현 위치에 맞는 삶의 기준을 찾아가고 조정해 가는 것이 삶의 안정감과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첫걸음이다.
잘못된 결혼규준
-부부간에는 ‘절대’ 싸우지 말아야 한다.
-부부는 서로의 욕구, 감정, 생각이 ‘무엇인지 다’ 알아야 한다.
-우리 관계가 좋아지려면 배우자 성격이 ‘변해야’ 한다.
-서로 ‘완벽한’ 성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남편은 아내보다 ‘더’ 큰 인격을 소유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보다 사회적으로 ‘더’ 유능해야 한다.
-‘모든’ 남편은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완전해야’ 한다.
-배우자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필요를 ‘알아야’ 한다.
-사랑한다면 ‘늘’ 서로를 보살피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부부는 ‘무슨 일이든’ 함께 해야 한다.
-부부는 ‘늘’ 생각과 행동을 같이 해야 한다.
(숙명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
일러스트: 염미영(mary_yum@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