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화 안수집사(은평대교구) - 사면초가 상황에서 주님이 길 열어주셔 |
문제해결 주님께 맡기고 전도에 전념 꿈꾸고 바라보며 기도하니 이루어져
나는 1983년도에 큰 누나의 전도로 우리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당시 기도원에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현재까지 남선교회 전도실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욥에게 고난이 하루아침에 닥쳤듯이 나에게도 고난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하루아침에 다니던 직장을 잃고 당장의 생활비를 걱정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했다. 더욱이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딸이 있는 상황에서 실직은 나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생활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집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집을 팔려고 부동산에 가서 알아보니 시세가 많이 떨어져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부동산에 내놓았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환경을 바라보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기로 작정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전도라는 것이 떠올라 1년 반동안 혼자서 전도활동에 매진했다. 아마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이라면 안가본 곳이 없을 것이다. 특히 암병동을 돌며 복음을 전하고 환우들을 위해 기도해주었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 강한 성령의 임재를 느끼며 내가 갖고 있는 문제는 잊어버리고 환우들을 위해 강하게 기도할 수 있었다. 그러자 깜짝 놀랄 일이 기도 중에 일어났다. 몇몇 환우 중에는 다 나았다며 그 자리에서 차고 있던 산소호흡기를 떼기도 했다. 성경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 낫게 해주신다는 말씀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 많이 듣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니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한번은 콩팥에 염증이 심각해 입원해 있는 타교회 송인선 권사님을 위해 기도해 드린 적이 있다. 간절히 기도를 해드리고 나니 송 권사님은 배가 시원해진 것 같다며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 후 몇 달 후에 나를 찾아오셨다는 송 권사님의 얘기를 교회에서 듣고 차후 연락해 만났는데 “집사님의 기도를 받고 의사검진을 받았는데 병이 다 나았다며 그날 퇴원했다”고 간증하는 것이 아닌가. 일련의 체험을 통해 내 문제도 해결받을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평소 조용기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4차원의 영성으로 꿈꾸고 바라보며 믿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당장 집을 팔고 옮겨야 하는데 꼭 필요로 하는 집을 그리며 기도했다. 그러자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집을 팔고 빚을 갚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늘 바라던 집도 살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다.
또한 평소 둘째 딸의 학업성적이 좋지 못해 늘 고민이었다. 지난 열두광주리 새벽기도회에서 이영훈 목사님이 “자녀가 좋은 성적을 내기보다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한다”는 말씀에 그대로 실천했더니 수학능력시험에서 높은 성적으로 가고 싶어하던 학교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할 수 있었다. 심지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계속 받으며 공부하고 지금은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일련의 모든 것들이 기적의 연속이었다.
한편 나는 평생 직장을 두고 간절히 기도하던 중에 이영훈 목사님의 설교 중에 구두공이었던 윌리엄 캐리 선교사 간증을 듣고 구두수선을 시작했다.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배우지도 않았지만 기도를 통해 주님이 주신 지혜와 영감으로 구두와 가방 등을 수선하는 일을 했다. 수선 결과물이 좋다보니 자연스레 손님도 많아졌다.
내가 처음 고난에 빠져 기도하고 전도할 때랑은 비교할 수 없이 달라진 환경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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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 2014.11.09. am 09:37 (편집) 정승환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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