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와 화해의 사람 - 손양원 목사(1902.6.3∼1950.9.28) |
손양원 목사는 1902년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손종일 장로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1917년 15세 소년 손양원은 선교사 맹호은(Macrae)에게 침례를 받았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스가모중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동양선교교회에 출석하며 한국에서 전도자로 몸 바칠 각오를 했다. 귀국 후 그는 1925년 경남성경학원을 졸업하고 전도사로서 울산 방어진교회 등에서 시무했다. 메켄지 선교사와 만나 부산 감만동에 위치한 나환자보호병원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후일 애양원에서 사역하는 등 한센 환우들과 함께 살아가게 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1938년 3월 16일 평양신학교를 33회로 졸업한 그는 부산으로 파송 받아 활동하다 신사참배반대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해임되었다가 1939년 여수 애양원의 교역자로 부임하게 된다. 이 곳에서 손양원은 학대 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위로의 복음과 하늘의 소망을 전하는 위로의 전령이기를 사모했다. 그러나 1940년 9월 신사참배 반대 및 거부로 체포되어 만 5년을 투옥살이 한다. 해방과 함께 석방된 그는 목사안수를 받고 다시 애양원에서 목회자의 삶을 산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으로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살해를 당했다. 이후 그는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 피난을 권고받으나 거동이 불편한 나환자들을 두고 혼자 피할 수 없다며 교회에 남았다. 이후 공산당원에게 체포되어 미평에서 순교했다.
평생을 나환자들을 위한 삶을 살았던 그는 아들을 살해한 원수를 용서함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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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 2014.11.02. am 10:19 (입력) 정승환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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