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글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가을, 따뜻한 남쪽을 향해 가던 철새 떼가 넓은 옥수수 밭을 발견하고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옥수수 알갱이를 마음껏 먹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시 목적지로 떠나는데 철새 한 마리가 하루만 더 머물러 있겠다고 했습니다. “옥수수 맛이 너무 좋다. 날씨도 아직 차지 않으니 오늘만 더 이곳에 남아 있다가 바로 뒤쫓아 가겠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역시 하루만 더 맛있는 옥수수를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내일 남쪽으로 출발하면 돼”, “내일 남쪽으로 출발해야지”하는 사이 몇 날이 가고 몇 주가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새는 문득 추위를 느꼈습니다. 바람이 매서웠고 그대로 있다가는 큰 곤경에 빠질 것 같았습니다. 새는 급히 날개를 펼치고 있는 힘을 다해 하늘을 날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너무 체중이 불어 오래 비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눈 속에 파묻혀 죽고 말았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철새 이야기는 현실안주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동치는 환경의 격변을 인식하지 못한 채 타성의 굴레에 갇혀 제자리를 맴도는 퇴행적 행동은 곧 쇠락의 첩경입 니다. 이는 개인이나 국가의 경우 공히 적용되는 철칙이라 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불법과적, 승무원들의 직무유기, 초동대응 미숙, 소극적 인명구조 활동 등 사고의 원인들이 밝혀지면서 모두가 분노하고 허탈해 했습니다. 살릴 수도 있었던 어린 학생들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가슴 아파 했습니다. 승객들의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공동체가 거듭 나는 계기로 삼고 과감한 개혁으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것을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가시적 결과는 전무합니다. 원인규명과 사고 수습 방안 등을 놓고 정치사회적인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의 판교 테크노벨리 환풍구 붕괴 사고 같은 안전사고들은 여전히 속출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준 국민 대각성과 국가개조의 절박한 ‘골든타임’이 무심히 흘러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현실에 집착해 다가오는 위기를 분별 못하는 어리석은 철새가 돼서는 안 됩니다.
김성동 장로(한세대 교수, 전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