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뒤에는 하나님 예비하신 복 있어
불평·불만 대신 기도하면 행복 찾아와
지난 5월 부푼 마음을 안고 생애 처음으로 티니안이라는 서태평양 북마리아나제도에 작은 섬으로 단기 선교를 다녀왔다. 교회의 창립을 돕고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치유의 기적을 체험해 그동안의 신앙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
예순 아홉이라는 나이에 준비하는 단기 선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차근히 준비하며 모든 것을 마치고 출국만 남은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병이 찾아왔다. 엉덩이 부위에 포도송이처럼 포진이 생겨 많이 아팠다. 또 하나는 심해진 관절염이었다. 2001년 교통사고로 다쳐서 23개월 동안 입원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왼쪽다리에는 핀이 7개가 박혀있다. 어느 때인가부터 왼쪽다리는 괜찮은데 오른쪽에 관절염이 걷는 게 많이 불편했다. 앉았다가 일어날 때도 바로 일어설 수 없고 한참 다리를 흔든 후에야 걸음을 떼었다. 너무 아파서 잠도 잘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 싶었다. 남들이 나이 때문에, 건강 때문에 뭐라 할지 몰라도 내겐 그만큼 간절했다. 기도하면서 고통을 이겨냈고 출국했다. 선교는 하루하루 감사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내 다리는 급기야 코끼리 다리처럼 부어올랐다. 함께 가신 동탄교회 이성우 목사님과 사모님이 열심히 주물러 주시고 기도도 엄청나게 많이 해주셨다. 선교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신세만 주는 것 같아 괴로움도 있었다. 하지만 같이 간 분들 모두 기도해주시면서 희망을 주셨다. 목사님은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셨으므로 치료가 임할지어다”라고 선포하면서 기도해주셨다.
귀국 후 병원에 가니 발목에 염증이 있다고 했다. 염증은 이내 나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한창 고통스러울 때는 잘 몰랐는데,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무릎의 통증이 사라져 있었다. 아프지 않은 다리로 열심히 다니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하셨다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사실 나는 하나님께서 크고 작은 병과 아픔을 많이 고쳐주셨다. 막내를 서른 살에 낳고 산후 조리를 못해서 오래도록 아팠는데 1980년도에 처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가서 예수님을 믿고 6개월 만에 성령충만을 받고 산후 후유증을 고침 받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건강해진 몸으로 지구역장 직분을 맡아 밤낮없이 전도와 성도 돌봄에 힘썼다. 그러다 1993년도에는 부천으로 이사를 가게 돼서 당시 설립 된지 얼마 안 된 중동성전(현 순복음중동교회)에서 개척자의 마음으로 매일 전도했다. 2007년에는 동탄으로 이사를 오게 됐는데 처음에는 지성전이 없어서 많이 당황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응답처럼 얼마 후 여의도순복음동탄교회가 세워졌다. 또다시 개척자의 자리에 서게 되니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나는 교회를 정말 사랑한다. 지금도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교회에 온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성전을 정리하고 스크린을 켜고 강대상에 물을 떠다 놓는다.
하나님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1남 2녀 자녀가 모두 주님 안에서 바르게 성장한 것이다. 남들이 보면 꽤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의 나이지만 한번도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한 적이 없고, 자녀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자녀들을 어떻게 키웠느냐고 묻는데 가정예배를 드려온 것 밖에는 달리 한 것이 없다. 어려서부터 주일을 철저히 지켜온 자녀들은 각자의 가정을 꾸려서도 변함없이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고 있다.
살다보면 고난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고난이 올 때마다 나는 불평불만을 말한 적이 없다. 믿음이 후퇴한 적도 없다. 고난이 오면 기도한다. “하나님 제게 무슨 복을 주시려고 하시나요” 그리고 정말 고난 뒤에는 내가 상상치 못한 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 안에만 있으면 웃을 일 밖에 없다. 주님 한분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