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지일 목사 104세 일기로 하나님 부르심 받아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 위해 평생 헌신
130년 한국교회의 역사의 산증인이자 영원한 현역, 곽송(郭松) 방지일 목사가 104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고 방지일 목사의 장례예배가 14일 오전 종로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려 교계 지도자와 성도 등 10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장례예배에서 이영훈 목사는 “방지일 목사님은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다 닳고 닳은 몸으로 천국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한국교회 부흥과 연합,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시고 예수님처럼 낮아짐으로 일생을 살았던 방 목사님의 삶을 한국교회가 본받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 방지일 목사는 이영훈 목사의 큰어머니의 조카이다. 평소 방지일 목사는 이영훈 목사를 매우 사랑했다. 이영훈 목사는 이날 훌륭한 믿음의 어른이 유머도 넘쳤고, 설탕을 많이 넣은 커피를 좋아하는 것 등 크고 작은 추억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례식장 앞에 놓인 영정 속 방지일 목사의 얼굴에 깊게 잡힌 주름과 백발은 그가 살아온 세월들을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1911년 5월 21일 평북 선천에서 출생한 방지일 목사는 아버지와 조부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뿌리 영적 자산을 물려받았다. 1933년 평양숭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평양대부흥의 진원지였던 평양 장대현교회 전도사로 일한다. 1937년 평양장로회 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평양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같은 해 4월 중국 산동성 선교사로 파송돼 21년간 봉직했다. 방지일 목사보다 먼저 아버지 방효원 목사와 고모부인 홍승한 목사는 장로교 선교사로서 중국 산동으로 파송돼, 복음전파하며 급성장을 가져왔다. 1937년에 방지일 목사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중국 선교사로 파송되어, 여러 교회를 세우며 중국인이 되어 살았다. 방지일 목사는 5번의 정변을 겪어냈지만 결국 공산화로 외국 선교사들이 모두 철수하고 최후로 방지일 목사까지 1957년 홍콩으로 추방됐다. 부산에 도착한 그는 먼저 부친 방효원 목사와 동생 방화일 목사의 묘를 찾아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듬해 영등포교회에 부임해 1979년 원로목사로 추대될 때까지 시무했다. 장로교의 분열을 안타까워하면서 한국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해 힘썼던 방지일 목사는 은퇴 이후에도 교파를 초월해 한국 교회 모두가 존경하는 목회자로 설교와 집필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었다. 2013년 부활절연합예배에서 그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설교를 전했다.
그러나 10일 갑작스런 소천 소식이 전해지자 방지일 목사 빈소에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교계 지도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조용기 목사는 바로 빈소를 찾아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방지일 목사님의 평소 소원대로 한국 교회가 정화되고 교단이 하나로 합치는 일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방지일 목사는 100권이 넘는 서적을 출간했다. 특히 그가 펴낸 저서 ‘피의 복음’은 중국어로 번역돼 중국 가정교회의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으며, 1992년에는 성경 66권 강해서를 완간해내기도 했다. ‘닳아 없어질지언정 녹슬지 않는다’는 좌우명으로 평생을 교회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방지일 목사는 숭실인상 추양목회대상,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언더우드 선교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