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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돌보라

 성경에서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 양(羊)이다(사진). 성경에서 양은 하나님께 제사로 드려지는 순전한 동물이다. 그 외에도 양은 좋은 상징과 은유로 나온다. 그런데 양은 그 특성이 다른 동물과 사뭇 다르다. 양은 순한 초식동물이다. 육식동물처럼 강하거나 사납지 않다. 그리고 다른 동물을 습격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다. 양의 생김새를 보면 자신을 보호하거나 공격할 만한 날카로운 뿔이나 송곳니가 없다. 발은 갈라진 굽으로 되어 움켜쥘만한 강한 다리가 아니고 발톱이 없다. 앞발로 상대방을 공격하여 제압할 수 없다. 뒷발도 적들을 걷어찰 만 하지도 못하다. 다른 초식동물에 비하여 다리가 짧고 잘 달리지도 못한다. 그 행동이 민첩하지 않아 굼뜬 것이 특징이다. 특히 눈은 근시여서 멀리 있는 것을 잘 보지 못하여 천적이 가까이 다가오기 전까지 인식을 못한다. 양들은 혼자 생활하기 보다는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이렇게 약점이 많은 양은 자연생태계에서 야생동물로 살아가기 어렵다. 이러한 동물은 지구상에서 생존자체가 어렵다. 사나운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신체적 구조나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어렵다.

 그러나 양들을 보호할 수 있는 선한 목자를 만나면 달라진다. 양들은 선한 목자를 만나면 그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좋아하는 시편 23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 우리의 목자 되시고 우리는 양이 되어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갈 때 부족함이 없으며 인도된 푸른 초장에서 쉬게 하시고 목마를 때 시원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비록 우리가 죽음의 공포가 있는 어두운 골짜기 같은 곳을 다닌다 해도 상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목자가 되시는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이 시는 다윗이 지은 시로써 어릴 때 들에서 양떼를 돌보았던 목동 시기를 생각하면서 지은 한편의 아름다운 시이다. 이 시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한 폭의 큰 그림 같은 풍광이 그려지며 목자이신 주님의 자비롭고 화평한 모습이 들어온다. 구원자이시며 돌보시는 주님은 예수님이시며  선한 목자이시다. 선한 목자는 그가 돌보는 양들을 위해 희생하신다. 선한 목자는 길을 잃은 양을 찾아 그 양을 얻은 기쁨으로 친구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기쁨을 나눈다(눅 15:4∼6). 경제적인 측면이나 효율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주님은 잃어버린 한 신자를 찾는 것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것으로 비유하신다.    

 성경에서 영적 지도자로 부름 받은 자들은 양떼를 돌보는 목자들이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믿음의 족장들은 대대로 목축(양)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창 46:34).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한 모세도 미디안 광야에서 부름을 받았을 때 이드로 장인의 양떼를 돌보던 목자였다(출 3:1). 이들은 양떼와 함께 살면서 사랑으로 돌보며 지키고 양육하는 사람이었다. 진정한 선한 목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역하지 않는다. 척박한 생태환경에서 혼자서는 살아갈 능력이 없는 어리고 연약한 양들을 돌보듯이 자신에게 속한 연약한 이웃을 힘써 돌보며 섬기는 자세를 몸소 실천한다. 심지어 사자나 곰, 이리 같은 사나운 맹수가 나타날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요 10:11). 그러나 거짓 목자는 위험해지면 양들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위해 도망한다(요 10:12).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 부인했고 다시 갈릴리 호수로 돌아가서 고기 잡던 베드로는 그곳을 찾아간 예수님을 만났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사람을 양으로 비유하사 3번이나 친히 반복하여 내 양을 먹이고 돌보라고 부탁하셨다(요 21:15∼17). 예수님은 끝까지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사랑하셨다(요 13:1).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은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성도를 세상 끝 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경 속에서도 먹이고 돌보며 사랑으로 섬기는 일이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이학박사·고촌순복음교회 담임목사

 

기사입력 : 2014.08.17. am 12:23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