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상수도 보급률은 98%입니다. 대도시는 거의 100%입니다. 정수처리를 거친 수돗물은 안전한 물입니다. 50가지 이상의 수질검사를 통해 각종 중금속과 유해물질, 냄새 원인물질, 세균 등을 걸러냅니다. 그런데 수돗물을 그대로 먹는 비율, 즉 직접 음용률은 3.7%에 불과합니다. 미국이 57%, 영국이 70%인 것에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치입니다. 상당수 가정은 정수기를 이용합니다. 기업체나 관공서에서도 먹는 샘물을 배달받아 먹거나 정수기를 이용합니다. 200여 곳의 제조·수입업체가 한해 170여만 대의 정수기를 팔고 있습니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대한주부클럽연합회 등 시민단체 3곳이 공동으로 수돗물과 정수기물의 수질을 비교, 검증해봤습니다. 전국의 아파트 10곳의 273가구에서 수돗물을 수거해 일반세균과 대장균, 잔류염소 그리고 각종 중금속 등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수질 기준을 만족시켜 적합판정을 받았습니다. 일부 수돗물에서 소독용 염소 성분이 나왔지만, 모두 기준치 이내였습니다.
조사가구 중 124가구에 설치된 정수기의 물을 추가로 조사한 결과,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49%인 61곳에서 수돗물 수질 기준을 초과하는 일반세균이 검출됐습니다. 일부 가구에서는 기준치의 최고 110배나 검출됐습니다. 염소가 검출되지 않은 수돗물에서도 일반세균은 기준치 이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부 정수기 자체의 성능문제나 세척 등 관리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세균이 검출된 정수기물을 먹어도 될까요? 기분은 찜찜하지만, 먹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정수기물이냐 수돗물이냐는 단지 선택의 문제인 셈입니다. 그래도 일반 국민들은 선뜻 수돗물만 이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그만큼 깊습니다. 수돗물로서는 억울한 일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정부 책임도 없지 않습니다. 법적 책임만을 따지며 낡은 옥내배관의 교체 책임을 소비자에게 미룬다든가, 녹조사태에서 보듯 수돗물 맛이나 냄새에 대한 불만을 기술적 설명으로만 무마하려한다든가 하는 점들이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우수한 수질만큼의 신뢰를 얻으려면 좀 더 겸손하고 치열한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나신하 기자(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