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번의 생명…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서울의 화려와 번잡이 무색하리만큼 고요하고 경건한 곳이 있다. 합정동에 위치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다. 이곳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한 묘비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나에게 천 번의 생명이 있다 해도 나는 그 모두를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이 묘의 주인은 루비 캔드릭 선교사다. 25해를 살다간 한 사람의 인생이 그리고 그의 죽음과 사랑이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뜨거운 감동으로 우리 몸과 마음으로 스며든다.
루비 캔드릭 선교사는 1883년 1월 미국 텍사스에서 출생했다. 캔드릭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랐다. 그녀는 소녀시절부터 영혼 구원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1905년 캔자스 여자성경학교를 졸업한 그는 선교사로 자원하고 2년간 준비했다. 텍사스 엡윗청년회의 후원을 받아 1907년 9월 미국 남감리교 선교사로 내한했다.
캔드릭 선교사는 황해도 개성(송도)의 한영학원에서 교사와 개성남부감리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맡았다. 아침기도회를 인도하고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아픈 아이들을 간호했다. 그녀는 우리말을 배우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려 노력했고 젊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사람들도 좋아했다.
캔드릭 선교사가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조선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아버지 어머니, 이곳 조선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이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이루어졌다.
그녀는 편지를 통해 교인들이 관가에 끌려가 순교당하는 등 기독교 박해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캔드릭 선교사는 박해가 너무 심해 철수하라는 선교부의 지시가 있으나 대부분 선교사는 순교할 각오로 머무르고 있음을 전했다. 이어 편지는 “저는 이곳에서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씨앗이 되어 이 땅에 묻히게 되었을 때 아마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조선을 향하는 저의 열정이 아니라,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끝을 맺는다.
캔드릭 선교사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1908년 6월 급성맹장염이 발생했고 서울로 호송돼 제중원에서 수술을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 온지 9개월 만이었다.
그즈음 텍사스 엡윗청년회의 선교대회가 열리고 있었고 조선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그녀의 편지가 도착했다. 일본을 거쳐 오랜 시간이 걸려 당도한 편지에는 ‘천의 생명이 있다면 천의 생명을 모두 한국을 위해 바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그곳에 모인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런데 이튿날 캔드릭 선교사가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보로 전해졌다. 대회장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들에게 열명씩, 스무명씩 조선 선교사로 오라고 일러주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엡윗청년회 선교대회에 참석한 수많은 젊은이의 가슴에 선교의 불씨를 지폈고 20여 명이 조선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했다.
한국에는 루비 캔드릭 선교사와 같은 무수한 순교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여전히 열렬히 이 땅을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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