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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선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 스물넷의 조선 청년 손기정의 우승은 일제 식민지였던 한반도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더욱이 3위 또한 우리 남승룡 선수가 차지하여 기쁨을 배가시켰습니다. 2시간 29분 19초, 당시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2시간 30분 벽을 깨뜨린 그의 기록 또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은 동아일보에 게재된 축시에서 민족의 심경을 대변했습니다. “(전략)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를 인류를 향해 외치고 싶다!/ 이제도 이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그러나 정작 1위 시상대에 선 손 선수의 표정은 비통했습니다. 조국의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달고 뛸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청년의 고뇌가 배어 있는 슬픈 모습 이었습니다. 생전에 그는 “어떻게 하면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릴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다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올림픽 우승자들이 서명하기로 돼 있던 국빈 방명록 등 사인 요청을 받을 때마다 ‘손긔정’이라고 한글로 쓰고 그 옆에 나라 이름을 ‘KOREA’라고 적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도 항상 일장기가 없는 옷을 입었습니다. 그의 아픔에 공감했던 동아일보는 8월 25일자 신문에 손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말소한 사진을 크게 실었습니다. 이로 인해 송진우 사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구속되고 신문은 무기정간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올림픽 마라톤 제패는 체육 분야는 물론 일제강점기 우리 사회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쾌거였습니다.

 그로부터 꼭 36년 뒤인 1992년, 공교롭게도 날짜까지 같았던 8월 9일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황영조 선수가 대망의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손기정 선생은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게 만든 나의 꿈이었습니다” 태극기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고 우승 인터뷰에서 황 선수가 했던 말입니다. 결국 암울한 시대 손기정 선수가 보여 준 불굴의 민족정신이 36년 뒤 황영조 승리의 뿌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역사의 밭에 눈물로 뿌려졌던 씨가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17일 베를린 올림픽 제패 77주년을 기념하는 ‘손기정 평화마라톤 대회’가 서울 잠실 일대에서 열렸습니다.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 11월, 1만5000명 참가자들이 펼친 레이스는 오늘 우리를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며 선대의 노고를 기린 ‘감사의 퍼레이드’였습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한세대 교수)

 

기사입력 : 2013.11.24. am 11:24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