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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명암

유다 멸망이 결정된 상황에서 진행된 때 놓친 개혁
요시야의 종교적인 선한 일은 기억되고 있어 


 햇빛이 강렬하게 비칠수록 그림자가 진하다는 말이 있다. 유다의 요시야 왕처럼 명암이 뚜렷한 왕도 찾기 쉽지 않다. 그는 열심히 야훼 하나님을 섬겼지만, 기울어가는 나라를 부흥시키지 못하고 일찍 죽고 말았다.

 열왕기하 23장 25장에는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야훼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런 요시야 왕은 형통하고 장수하는 복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요시야는 바벨론과 전쟁하기 위해 유다의 영토를 지나가려는 애굽의 군대를 저지하다가 39세의 짧은 나이로 므깃도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요시야의 갑작스런 죽음은 신명기의 축복관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숙제를 남겨놓았다.

 성경기자는 그 문제를 신명기적 관점과는 다르지만 또 다른 성경의 가르침인 공동체 사상의 관점으로 해명하였다. 열왕기하 23장 26절에서 “그러나 야훼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야훼를 격노하게 한 그 모든 격노 때문이라”고 말씀하였다. 다시 말해서 요시야의 죽음으로써 유다 왕국이 신속히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된 까닭이 요시야의 할아버지 므낫세의 죄악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러한 해명은 넓은 견지에서 보면 죄악과 불순종의 결과가 3∼4대까지 이르게 된다는 말씀이 성취된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자신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길지라도 조상의 죄의 결과를 물리치지 못한다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민족이나 조상의 죄악 앞에서 개인적 선행은 과연 무익한 것인가? 구약성경에 나타난 사람은 민족적 세계적 울타리 안에서 어쩔 수 없이 함께 그 운명을 걸머질 수밖에 없는 공동체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창조적인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유다 민족의 멸망이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진행된 때를 놓친 개혁이었고,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킬 수 없는 한계를 가진 개인적인 개혁이었다. 하지만 그의 종교적인 선한 일들은 히스기야의 기도와 선행을 기억해주신 것처럼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개인적인 회개와 신앙의 열심이 조상의 저주를 극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거역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신앙의 좌절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요시야의 죽음은 겉으로 보면 재앙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재앙이라고 볼 수 없다. 국가적인 멸망이 눈앞에 다가왔다면 재앙을 겪기 전에 일찍 죽는 것이 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사야 57장 1절에는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라고 말씀하였다. 이스라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는 가문이 멸망하기 전에 모든 사람들이 애통하는 가운데 일찍 죽어 평안히 장사되었다. 이처럼 요시야 왕도 자식들이 죽임을 당하고, 나라가 완전히 멸망하는 것을 보기 전에 일찍 죽음을 당했다. 재앙의 날에 장수하는 것은 결코 신명기적 축복이 아닌 것이다.

 더 나아가서 유다 멸망기와 포로기의 선지자인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개인적 신앙의 경건으로 바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다고 새롭게 말하였다. 그들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신 포도를 먹지 않은 아들의 이가 시리다는 공동체적 형벌의 격언을 다시는 사용치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고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을 것이며,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간다고 선포하였다(겔 18:20).

 이와 같이 신명기적 역사가는 유다 멸망시기의 마지막 의인 요시야의 죽음을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길 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국가 멸망으로 인한 신앙의 시련기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신명기적 대원칙이 흔들리지 않고 가슴에 새겨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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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으로 ‘신명기적 관점으로 본 이스라엘 역사’는 끝을 맺습니다. 다음 연재는 성경에서 ‘기도’에 관한 본문을 찾아 해설하고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기사입력 : 2013.10.27. am 11:05 (편집)
오정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