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악하고 패역한 세대에 진정한 헌신과 사랑 그리고 자유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지켜주는 유일무이한 ‘증거’이며 ‘능력’이다.
어느 날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물이 가득 찬 물동이를 지고 가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그 물동이 속에는 나뭇가지 하나가 담겨져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루터는 물동이를 지고 가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 나뭇가지 하나 덕분에 물동이 가득 물을 넣어도 물이 출렁거려 쏟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루터는 이 평범한 이치를 통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위태로운 이 세상과 죄악이 관영하여 사망으로 넘쳐 버릴 것 같은 인생길에 서있는 우리들의 생명과 안정을 줄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었다.
‘십자가 중심’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할 뿐만 아니라, 요동치는 절망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 우리의 인생을 지키는 은혜이며 능력이다.
1941년 1월 6일 루즈벨트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국민의 4대 자유를 제창하였다. 그것은 ① 어디서나 말할 수 있는 자유 : 언론의 자유 ②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는 자유 : 종교의 자유 ③ 어디서나 결핍으로부터 해방 받을 수 있는 자유 :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④ 어디서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 : 삶의 불안으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자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존 스토트(John Stott)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다섯 번째의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언론, 종교, 빈곤, 공포에 대한 자유에 이은 다섯 번째의 자유, 그 자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죄와 사망로부터의 자유’라고 말하였다.
쓰러질 듯 목이 타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겨우 물을 찾아내었다. 모두들 달려가 그 물을 마셨지만, 모두 토해내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쓴물’을 내는 ‘마라’의 샘물이었던 것이다. 백성들의 원망소리를 들은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나뭇가지 하나를 그 물에 던져 넣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구토가 날 정도로 ‘쓴물’이 달아져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흔들리는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능력인 동시에 쓴물처럼 고통 받는 인생의 진정한 치료제가 된다.
김에녹 목사 henoch9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