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부터 새롭게 살펴볼 주제는 ‘성령의 열매’(갈 5:22,23)이다. ‘성령의 열매’는 바로 전에 언급된 ‘육체의 일’과 대조되는데(5:19∼20), 한글 개역개정 성경에서 ‘오직’(22절)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의 원래 의미는 ‘그러나’이다. 이 반의 접속사는 ‘육체’와 ‘성령’, ‘일’과 ‘열매’를 대조시키는 기능을 한다. 바울은 육체의 주도아래 이루어지는 행위(일)들과 인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산물로 주어지는 열매를 구분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따를 수 있다고 전제한다. 하나는 사탄이 가져다주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함에 이끌려 살아가는 방식이다.
고린도전서에서 ‘은사’가 복수형으로 쓰인 것에 반해(고전 12:4), 여기서 ‘열매’는 단수형으로 쓰이고 있다. 은사는 각 사람에게 차별적으로 주어지는 성령의 능력인 반면에, 열매는 성령을 따라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은사가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면, 열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경은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성도들이 이루어야 할 ‘그리스도의 형상’(갈 4:19)이라고 말씀한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이 ‘사랑’이다. 성경은 사랑을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고전 13:13). 성경은 사랑을 가리켜 ‘온전한 것’이며 영원하다고 말씀한다(고전 13:8,10).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라고 말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한다(요일 4:16).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시다(요일 4:8). 사랑은 하나님의 여러 속성 중에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근본 속성이다.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양식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다. 요한일서 4장 9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자기의 사랑을 알리셨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자기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 주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하셨다. 성경은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5)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요일 4:19). 뿐만 아니라 이웃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적인 변화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인 행위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사랑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우리가 베풀어야 할 사랑이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 5:13)라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육체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해야 함을 설파한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에 대해 올바로 알기 위해 힘써야 한다(요일 3:16). 사랑은 죄와 죽음까지도 이기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희생적이며, 영광스러운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사랑을 통하여 그 의미를 새롭게 배우게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요 15:10).
국제신학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