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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여로보암의 길

‘불순종·파멸·죽음의 길’로 상징 돼
금송아지 우상 섬겨 하나님 거역한 것이 첫 째 죄 
여로보암 정치적 행보는 신명기적 가르침 위배 행위
 
 로버트 프루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선택하였고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망설이다가 한 길을 택하지만,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긴 채 인생길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모든 길을 선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니다. 그 뿐만 아니라 결코 선택해서는 안 될 길이 있다. 그 길은 불순종의 길이고 파멸의 길이며 죽음의 길이다. 구약성경에서 그러한 잘못된 길을 상징하는 용어가 ‘여로보암의 길’, 또는 ‘여로보암의 죄’이다.

 여로보암은 솔로몬 통치시절에 역군의 감독으로 일했다. 아마도 그는 성실하였고 능력과 지혜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그가 선지자 아히야를 만났을 때 아히야는 자기 옷을 열 두 조각으로 찢어서 열 조각을 주면서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솔로몬이 죽은 후 여로보암은 아히야의 예언대로 북부 열 지파를 다스리는 이스라엘 왕이 됐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왕이 된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섬기러 가는 예루살렘의 길을 봉쇄하고 다른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 길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왕들이 따라간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상징하는 ‘여로보암의 길’이 됐다.

  여로보암은 남북이 분열된 후 북왕국의 남쪽 도시인 벧엘과 북쪽 도시인 단에 예배처소를 세우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금송아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그들의 신이라 하고,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했다. 신명기적 관점에서 보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 여로보암의 길로 가는 첫 번째 죄악으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고 섬김으로써 한 분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인 것이다. 신명기에서 쉐마라고 하는 구절에서는 특별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야훼는 오직 유일한 야훼이시니’라고 말씀하며(신 6:4), 결코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두 번째 여로보암의 죄악은 벧엘과 단에 다른 성소를 세움으로써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신명기 12장에서는 하나님 야훼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에서 예배하라고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 택하신 곳이 예루살렘인지 세겜의 그리심산인지에 대해서는 신학적 논쟁이 있었지만(요 4:20), 결코 벧엘과 단은 아니었다.

 세 번째 여로보암의 죄악은 새롭게 제의를 제정한 것이었다. 그는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자기 마음대로 절기를 변경해 예배를 드렸다. 당시는 제정일치의 국가사회였기 때문에 제사제도의 변경은 국가의 정체성을 변경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써 하나님의 성민으로서 하나의 공동체(정부)를 형성하라는 신명기적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었다(신 7:6).

 이러한 여로보암의 죄는 당대에 그친 것이 아니라 북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모든 이스라엘 왕들은 벧엘과 단의 예배처소와 금송아지를 제거하지 않았고, 남북이 분리된 제의를 강요함으로써 하나님의 성민이 되고 하나의 국가가 되는 길을 가로 막았다. 그 결과 모든 왕들은 악한 왕들로 평가되었고,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여로보암의 길’은 북왕국의 멸망을 역사적으로 회고하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의 치적을 평가하는 척도였다. 그 왕들 중에는 경제적인 번영을 이룩했거나 바알종교를 척결하는 등의 업적을 세운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 분 하나님과 하나의 성소, 하나의 정부를 주장하는 신명기의 가르침에 어긋났기 때문에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되지 않고, 모두 악한 길로 행한 왕들이 됐다.

 

기사입력 : 2013.03.31. am 09:4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