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훈계의 막막함은 소통의 문제
희생이 아닌 사랑으로 자녀 양육해야

 가족을 사랑하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다시 자기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어본다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족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지 또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모도 자식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예전에는 10남매 가정에 8째로 태어나서 부모의 관심보다는 형들 누나들 보호 속에 자란 사람들이 많았다. 자식을 많이 두던 시절에는 일일이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거나 가르칠 수 없었다. 그들은 알아서 형제들 속에서 배우고 익히고 살아남았다. 그러나 요즘은 가정마다 자녀수가 하나 또는 둘 뿐인 경우가 많고 적게 낳아 잘 키우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보니 맞벌이와 같이 부모가 모두 사회활동으로 바쁜 가운데에도 자녀에 대한 교육과 양육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에게 100만원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자녀를 위해서는 선뜻 지불하게 된다. 섭섭한 것은 그러한 일방적인 자녀사랑에 대해 자녀는 감사하지도 않고 심지어 귀찮아 한다는 것이다. 학원은 잘 갔는지 시험은 잘 봤는지 이상한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는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등 부모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녀의 필요를 해결해 주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 놓은 10대 자녀가 집을 나간다면 부모의 기분은 어떨까? 새벽밥 해가며 내조했던 조강지처가 남편이 바람났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고 불안할지 모른다. 배우자의 외도는 배신감을 느끼게 하지만 자녀의 가출은 가정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났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부모는 가출한 자녀를 찾아 실컷 때려줄 수도 없고 너 같은 자식 필요 없다고 내쫓을 수도 없다. 그저 집이 왜 싫었을까를 생각하며 좋은 부모가 되어주고, 아이의 욕구를 이해하고 반영해 주며 이제는 공부해라 게임하지 마라 잔소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만 가득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출한 자녀의 입장은 다르다. 가출이나 일탈 행동 후 부모의 온유하려 힘쓰는 마음을 오히려 악용하며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십상이다. 당근으로도 채찍으로도 말을 들지 않는 이러한 자녀 앞에서 부모는 자신의 부모역할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자신감이 떨어진다.

 이렇듯 자녀 앞에서 느끼는 부모의 막연한 감정 그리고 지도와 훈계의 막막함은 결국 자신이 지닌 소통의 문제이고 부족했던 자신의 성장경험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자녀에게 느끼는 감정을 자녀가 느낄 수 없다는 것도 자녀가 느끼는 혼란과 방황을 내가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둘의 관계를 점점 불신과 단절로 몰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박사인 어느 부부는 자녀가 공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자녀에게 싫어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그것을 하라고 했다. 아이는 드럼도 배우고 운동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며 중학생이 되도록 열심히 놀았다. 전교에서 꼴찌를 할 정도로 학업은 관리되지 않았다. 부모님 자신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공부를 부모의 기대로 억지로 해 냈는데 자신의 자녀만큼은 그러한 억지 강요가 없는 이상적인 양육환경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길 바랐던 것이다. 그랬더니 아이는 공부의 기초조차 잡히지 않고 일(공부)도 하지 않은 채 휴식(놀이)만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상태에 놓이게 됐다. 나는 그의 부모에게 세상에 하고 싶은 것도 있고 해야 하는 것도 있으며 이 둘을 잘 균형 맞출 수 있도록 부모님이 지도해 주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부를 못하는 자녀를 포기해 버린 아버지와 아버지 앞에 위축된 아이를 위로하고 지지해 주는 어머니 속에서 자녀는 독선적인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과 내편이 되어주는 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과 미성숙의 문제에서 봉착할 수밖에 없다. 휴식은 노동 후에 더욱 값지고, 노력한 후 얻는 소득은 값지다는 균형 있는 사고방식이 없이는 자율이 아닌 방탕과 쾌락주의로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어머니는 아이의 수준에 맞게 하루에 2시간 또는 3시간이라도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습지도를 하기 시작하셨다. 공부 이후에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휴대폰 게임을 하는 것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아이는 이제 3시간 앉아 있던 시간을 4∼5시간으로 늘리게 되었고 아버지도 달라진 자녀의 모습에 마음이 풀어질 수 있었다. 열매를 얻기 위해 땅에 거름을 주고 과실을 하나하나 종이로 쌓아 가꾸는 과수원 주인의 심정으로 자녀가 목표하는 결과를 얻기까지 학원을 가거나 숙제를 다 끝내는 것이 아닌 합당한 과정을 잘 수행하도록 함께 해주고 격려하는 부모의 역할이 있다면 자녀는 어느 덧 자기관리를 잘 하는 성장과 성숙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는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벽일찍 일어나 따뜻한 밥을 지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희생만으로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피곤에 지친 내 몸과 마음에 따뜻한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 자기 사랑이고 애쓰며 공부한다고 2∼3시간 앉아 있던 자녀를 격려하고 달콤한 휴식을 제공할 때 부모의 자녀사랑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는 과연 나의 사랑을 잘 공급받고 있을까? 혹시 부모의 사랑을 어떤 이유에서든 불신하고 있을까? 아래의 질문에 체크해 보자. 5가지 이상의 행동특성이 체크된다면 우리 자녀는 지금 애정결핍 상태일 수 있다.

□ 반항적이고 논쟁적임
□ 잦은 또는 강한 분노표출
□ 슬플 때 울지 못함
□ 부도덕 또는 양심 결여
□ 자기, 타인 또는 물건 파괴
□ 동물학대
□ 도벽
□ 잦은 거짓말
□ 충동성 또는 과잉행동
□ 또래 관계 소원 또는 왕따
□ 게임중독 인터넷 중독
□ 규칙이나 약속을 무시함
□ 불이나 폭력에 몰입됨

글: 김수정심리발달연구소장  그림: 염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