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 받았던 은혜, 쌀 나눔으로 갚아
경제적 어려움 이기고, 자녀 축복 누려
나는 1986년부터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다니면서 믿음 생활을 해왔다.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셔서 우리 부부는 슈퍼마켓 운영을 하며 성실하게 기쁘게 살았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고난이 찾아왔다. 15년 전 우리 가게가 있는 건물이 팔리면서 우리도 가게를 비워줘야 했다. 장사가 참 잘되는 곳인데 3개월 쯤 말미를 주고 나가라고 했다. 갑자기 당한 일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울증 때문에 잠이 안 오고 겨우 잠들었다가 깨면 새벽 두세시였다. 교회를 찾아가 울며 기도했다. 기도만이 유일한 나의 출구였다. ‘하나님 도와주세요’부터 시작해서 내 마음속의 모든 말을 하나님께 했다.
생활이 많이 어려워졌을 때는 교회에서 성미를 받기도 했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자고만 싶은데도 기도를 하면 힘을 주셨다. 내가 다 포기하고 죽고 싶은 순간에도 말씀을 보면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 ‘지금이 일어날 때다’라는 음성이 들려와 순간순간 삶을 붙잡을 수 있었다.
집을 팔고 7번 이사를 하며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 가정의 살림을 하나님께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채워주셨다. 나는 청소 일을 다녔고 처음에는 마음을 잡지 못했던 남편도 2006년에 안산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경비로 취직하게 됐다. 청소를 하려면 몸을 쉼 없이 움직여야하는데 오히려 나에게는 그게 도움이 됐다.
경제적으로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1남 2녀 자녀들은 자기 몫을 해나갔다. 어려서부터 교회와 학교밖에 몰랐던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잘 개척했다. 특히 아들에 대해서는 1991년부터 교수가 될 것이라는 꿈을 꾸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19년 만에 응답하셨다. 안수집사로서 인천순복음교회를 출석하는 아들은 3년 전 인천 모 대학의 교수가 됐다.
막내딸은 2011년 아이를 출산했다. 하지만 심장이 좋지 않았던 아기가 82일 만에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손자를 잃고 참 많이 괴로웠다. 보물 같은 아이를 잃고 우울함이 깊어졌다. 하지만 신앙이 깊은 딸은 기도로 아픔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 시부모님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고 딸은 새 생명을 잉태하게 돼 현재 임신 6개월이다.
그러던 지난 1월 27일 주일 3부 예배를 드리는데 이장균 목사님께서 누가복음 4장 말씀을 선포하시는데 말씀을 듣는 순간 눈물이 주체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나를 괴롭히던 우울증이 사라졌음이 뱃속부터 느껴졌다. 나만 그리 느낀게 아니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다 나았네요”라는 말을 하시는게 아닌가. 내가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어요”라고 말하자 의사는 약은 내가 줬는데 왜 하나님 이야기를 하느냐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고쳐주셨음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하루 세 번 씩 먹던 약도 한번으로 줄었다.
어느새 뒤돌아보니 경제적으로도 엄청나게 축복을 받게 됐다. 집을 팔고 사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했더니 8채의 집이 있는 빌라를 짓게 됐다. 하나님이 제때 집을 팔리게 해주셨고 모자람도 남음도 없이 정확하게 채워주셨다.
2008년 1월 첫 예배 때 조용기 목사님의 말씀을 듣던 중 ‘풍성히 심으라’는 말씀이 레마로 다가왔다. 풍성하게 심고 싶은 마음이 불일 듯 일어 나보다 어려운 삶을 사는 이웃들을 돕기 시작했다. 식당 봉사를 비롯해 교회를 오가며 보이는 궂은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지난해 여름에는 권사금식기도대성회에서 큰 은혜를 받아 기도원에서 내려오자마자 쌀가게로 달려갔다. 쌀을 20kg짜리 10포대를 사서 교회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질 수 있도록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배고픈 사람들에게 쌀을 주면 좋겠다, 나도 어려울 때 성미를 받아서 먹었는데 갚아야겠다’는 생각에 쌀 10포대를 기증했다. 요즘 나는 이영훈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 제가 주님께 무엇을 드릴까요”하고 기도한다. 앞으로도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나님과 이웃에게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