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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과 한국 교회

 만물이 소생하는 3월! 그 첫 날이 ‘3.1절’인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대한독립만세” 시위는 한반도 전역은 물론 해외동포들에게까지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이는 한겨울 같았던 일본의 혹독한 식민지 압제 속에서도 민족의 기상이 꿋꿋이 살아있음을 세계만방에 보여준 쾌거였습니다.

 더욱 주목할 것은 청사에 빛나는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교회가 해냈다는 사실입니다. 7635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이 있었음에도 비폭력 평화노선을 일관되게 견지할 수 있었던 것도 “선으로 악을 이기려 했던” 기독교인들의 지도력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온 지 25년,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지도자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13명은 목사와 전도사였습니다. 거사일도 원래 3월 3일로 잡았다가 마침 그 날이 고종황제의 장례일이어서 피하고, 바로 전날인 3월 2일은 주일이었기에 결국 토요일인 3월 1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립만세운동은 1일 서울을 필두로 평양, 예산, 옥구, 대구, 광주, 철원, 부산, 21일 제주도까지 삽시간에 확산되었는데 이는 지역마다 교회와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년 후에 잡혀진 피해통계에서도 화성 제암리교회를 비롯해 무려 57개 교회가 불태워진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교회가 독립운동의 진원지임을 입증하는 역사적 자료입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3.1운동’을 이끈 신앙선배들의 헌신과 충성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부디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계승해 시대의 파수꾼 된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주님께 더욱 간절히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김성동 장로(전 국회의원)

 

기사입력 : 2013.02.24. am 11:29 (입력)